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사랑과 긍지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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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를 비롯해 순찰대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실은 EU 탈퇴 찬성파였다. "이민자가 너무 늘어나 학교와 병원이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영국은 이민을 통제할 수 있는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라고 말하던 아저씨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영국에 들어와 사는 외국 국적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존중하며 생활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정치권에서 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자,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 돌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부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돕겠다.

p.29

"그야 네가 하는 말이 대부분 옳다고 생각해. 하지만 맘에 안들어."

사이먼이 말했다.

"내가 좋은가 싫은가를 기준으로 사회를 봐서는 안 돼."

p.63

예전의 젊은이들은 조금 길을 잘못 들어도 괜찮았다.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경쟁, 경쟁, 경쟁 소리만 들리고 경쟁에서 지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패자의 아름다움'이라는 풍류 같은 것은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제 경쟁에서 진 젊은이들은 차브(하층 계급)가 되는 수밖에 없다.

p.82

"인생에는 나쁜 일도 있어. 그런 일들은 정말로 우리를 미치게 하지."

에릭 아이들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노래인지 눈치챈 사람이 한 명, 또 한 명 일어나 맥주잔을 높이 들고 좌우로 몸을 흔들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언제나 인생의 밝은 면을 보기를."

pp.108~109

"응, 우리 나이가 되면 만취도 목숨 걸고 해야지."

p.184

야단맞고, 멍청한 일을 하고, 호되게 당하고, 엉덩이를 내놓으면서 아저씨들의 인생은 앞으로도 이어진다.

당신들을 축복해야지. 베이비.

아직도 칭찬할 만한 삶을 사는 것 같지는 않은 그들이지만.

p.225

브래디 미카코,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中

+) 이 책에는 부제가 있다.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사랑과 긍지'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위 꼰대 아저씨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듯, 영국에서도 백인 노동 계급 중장년 아저씨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둘의 중요한 차이점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세대 간 차이가 아니라 알게 모르게 틀지워진 사회 혹은 계층 간 차이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꼰대 아저씨와 이 책에 등장하는 노동 계급의 아저씨들은 좀 다르다.

저자는 자신이 보아온 그들, 즉 자동차 파견 수리공, 운전기사, 마트 점원, 택배 기사 등의 노동 계급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 풀어냈다. 생생하고 위트있는 이야기라 솔직히 사실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시대현실을 담아낸 리얼리티 소설이네, 하고 다 읽고 보니.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사회에세이였다. 아, 리얼리티 소설이 아니라 리얼한 현실이었구나.

저자는 일본 출신 여성으로 영국에 건너간 이민자다. 영국의 백인 노동 계급 아저씨들이 여성과 이민자를 차별하고 영국의 EU 탈퇴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 긴축재정이 길어지면서 가난한 이들끼리 챙겨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드러낼 땐 이민자를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도 가난한 공동체로 같이 챙겨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어떤 부분에서는 뼛속까지 대화가 통화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툴툴거려도 챙길 껀 챙기는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도 분명히 존재한다. 저자의 말처럼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아저씨들을 하나로 묶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아저씨들은 모습은 대체로 그렇다. 좀 답답한 츤데레 아저씨 같아서 또 좀 은근히 안타까운 모습이랄까.

어찌 보면 심각한 사회 문화적인 문제를 위트있고 재미있게 담은 책이다. 저자는 영국 사회 내에 존재하는 여러 갈등과 차별 문제를 드러냈다. 세대 갈등, 노동 계급에 대한 편견, 브렉시트 찬반에 대한 의견 차이, 국가 의료제도의 한계와 EU 탈퇴에 대한 견해 차, 이민자와 인종차별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를 저자는 가볍고 재미있게 써내려갔다. 이 책의 전반에 녹아 있는 영국 음악과 문화의 모습들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저자만의 쿨하고 위트있는 문체가 읽기 편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회 에세이, 사회학으로 분류된 이 책 한 권을 한 편의 소설 읽듯 흥미롭게 읽었다. 더불어 어렵고 무거운 사회 문제를 음악과 문화, 그리고 거리두기의 시선으로 조금 가볍게 다뤄볼 수도 있겠다 하고 느낀 책이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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