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투어
김상균 지음 / 이야기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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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아 그게, 아시다시피 버스가 다 자율주행이잖아요. 기사분이 안계셔서."

"그 시간이면 버스 안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을 거 아닙니까."

"음, 어제 한일전 축구 경기가 있었잖아요. 버스 안에 승객이 정확히 12명 있었는데, 모두 VR 헤드셋 쓰고 월드컵 경기를 봤더라고요. CCTV를 보니 다 그랬습니다. 아내분이 사고당한 시간이 정확히 후반전에 동점골 터졌을 때라 사람들이 뭐 버스 안에 앉아 있었다뿐이지, 강도 사건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하네요."

p.12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좀 찜찜하신가 본데, 김상균 교수라고 아시죠? 메타버스 연구하는 분이요."

"아 네."

"어떤 상황에서 인간이 가장 괴로워하는지, 그 교수님에게 자문 받아서 만든 시스템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상균 교수라는 사람이 이런 잔인한 연구를 했나 보군요."

"하하. 그런 건 아니고요. 오히려 그 반대죠. 그 교수님은 원래 사람이 언제 몰입하는지, 무엇을 즐거워하는지 등을 연구한 분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저희는 그분이 제시하는 반대의 상황을 범죄자들에게 경험하게 하는 겁니다."

p.18 [올드보이의 악몽]

내가 언아더월드에 들어온 후로,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기억과 의식을 복제하여 게임 속 메타버스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살아있던 이의 기억과 의식을 복제하는 것에 대해 법은 어떠한 금지나 통제, 제재도 하지 않았다.

개인적 판단, 자율의 영역으로 놓아둔 셈이었다.

p.72 [언아더월드]

지하에 숨은 인간을 대신해서 각자가 조종하는 아바타들이 지상의 삶을 대신 사는 세상. 다은이 만났던 핑크빛의 다섯은 모두 누군가의 아바타들이었다.

"차별 없는 세상, 완전히 평등한 세상을 위해 아바타를 그렇게 만들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꽤 오래전의 일이죠. 성별, 인종, 나이를 알 수 없도록 모두 핑크빛 피부에 똑같은 키,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언어도 그렇습니다."

pp.102~103 [핑크빛 평등]

김상균, <브레인투어> 中

+) 이 책에 담긴 단편 소설들을 읽으면서 가끔은 SF 과학 소설을 보는 것 같다가 또 가끔은 미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리얼리티 소설을 접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추리 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순수 서정 소설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 책에 실린 단편 소설들은 메타버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공톰점이 있다. 메타버스가 일반화된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회의 여러 모습을 묘사한다. 메타버스가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 모두 예상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 실린 단편 소설들은 상당히 리얼하게 그런 모습들을 그려낸 듯 하다.

[아무도 없었다]의 경우 증강현실 창문을 설치한 집들이 즐비하고 VR 헤드셋이 대중화되면서,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범죄의 증가로 이어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일부러 사람들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메타버스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파편화, 개인화된 모습으로 살게 되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라 굉장히 몰입도가 높았던 소설이다. 그리고 내가 만약 증강현실 창문을 설치한 집에서 산다면 어떨지 생각해보았다. 아마 처음에는 신기해서 그 창으로 바다와 숲과 자연의 모습을 비추겠지만, 점점 비슷하고 인위적인 풍경보다 매일매일이 다른 현실 풍경을 보지 않을까 싶다.

[[브레인투어]와 [나 혼자 안산다], [증강현실 콩깍지] 등의 작품 역시 다른 사람의 숨은 일상과 생각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속성과,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상대를 보고 싶은 욕망을 재미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유령도시]와 [연애인] 또한 메타버스 플랫폼이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만든 소설들이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대부분 짧은 편이다. 그러나 각 소설마다 메타버스 시대라면 실현가능한 일들을 담고 있어서 놀라운만큼 신기했고 쓸쓸하지만 재미있었다. 작품 별 몰입도가 높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들이 현 시점에서 메타버스 시대를 상상할 때 막연한 모습이 아닌 실현가능한 모습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제게 있어 메타버스는 인간의 마음을 연결하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그 세상은 제게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런 기대와 두려움을 이야기 속 김상균에게 투영했습니다.", "제가 실명으로 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 학술논문도 일부 인용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 스토리가 그저 헛된 망상이 아님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저자의 말이 그대로 잘 녹아있는 단편 소설집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메타버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 시대의 양면적인 모습 중에서 이왕이면 좀 더 밝고 따뜻한 세상을 이끌어갔으면 한다. 메타버스 시대의 모습이 궁금하다거나, 메타버스를 잘 몰라서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읽어도 흥미로운 책일 듯 하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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