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키보드
설경 지음 / 캡스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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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건 그런 것이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그 선택을 두고 좀 더 버텨 볼걸 하고 후회하고 있을지 아니면 고통을 끝내고 비로소 편안해졌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으면 언젠가 그 선택 말고 다른 걸 선택할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온다는 것이다. 주변 상황이 변하든, 내가 변하든 말이다. 그러니 정말로 힘들 때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마라.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라.

p.25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한 오스트리아의 건축가인 훈데르트바서는 "신은 직선을 만들지 않았다. 자연에는 곡선만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런데 자연과 조화로운 인간의 삶 역시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그 진리를 나는 한참 나이를 들어서야 깨달았다.

p.32

느긋해 보인다고 불안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가끔 내 불안을 일깨워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하지 않는 걱정을 대신 해준다고나 할까. 처음에 그들은 자기 걱정부터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거기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나를 걸고넘어진다. 불안에 동참하라는 식이다.

그렇지만 불안해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소중한 시간이 좀 먹을 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삶의 방식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불안을 선택한 인생이 더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선택을 지지한다. 확실한 해결책을 내줄 것이 아니면, 내 걱정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어쭙잖은 충고와 오지랖 넓은 참견은 사양한다.

p.72

나는 지금 내가 살아 있음이 감사하다.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감사하다. 예상하지 못했을 때 안타깝게 내게 죽음이 닥쳐오더라도 나는 그 시간마저 감사하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남기는 나의 타이핑은 일종의 유서이다. 진리를 이해하려고, 선을 행하려고, 미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살다 가다.

p.76

오늘을 잊지 말아야지. 난 좀 더 어른스러워져야 하고 씩씩해져야 한다. 그래서 누가 뭐래도 억울하지 않도록, 누가 무시해도 상처입지 않도록 나를 무장해야겠다. 아직 구체적인 전술은 없다. 다만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는 것, 그것만은 잊지 말자.

p.134

외로움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몰입이다.

p.166

늘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고 지내면 자신의 성격을 잊고 살게 된다. 주변 사람들도 내 성격에 익숙해지고, 나도 그들의 성격에 익숙해져서 특별히 "성깔"을 드러낼 일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엔 욱한 적 없네. 소리 지르고 화를 낸 적도 없군.'하면서 가끔 스스로 성격이 좋아졌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p.179

설경, <온 더 키보드> 中

+)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이 살면서 겪은 일들과 그 순간의 감정들을 블로그에 기록한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그것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가톨릭 신자인 저자가 성당에 다시 나가기까지의 과정들, 믿음에 대한 혼란스러운 마음들, 사랑한 사람들과의 기억들, 몸과 마음이 아플 때 은둔했던 생활들, 죽음에 대한 단상들, 행복에 대한 다짐들 등을 짤막한 에세이로 써서 한 권에 담았다.

책을 읽으면서 목차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 단축키의 기능을 잘 몰라서 무슨 뜻인가 따로 찾아보고 그 의미를 이해했다. 이 책의 1부는 Home, 2부는 CTRL + Z, 3부는 CTRL + SHIFT + I 로 구성되었다. 아마도 저자는 인생을 처음부터 시작하여, 되돌리고 싶었던 순간들, 그리고 반전 즉 선택한 것을 반대로 만드는 순간의 장면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싶다.

분량이 꽤 있는 성실한 에세이집인 이 책의 말미에 저자는 이렇게 언급했다.

"그간의 시간이 나에게는 그토록 손에 넣고 싶었던 행복이라는 절대 반지를 찾아가는 여정이었고, 이 책은 그 과정을 역추적하는 보고서 같은 것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런 저자의 마음에 공감했다. 그래서 여기 실린 편지 형식의 글을 조금 선별하여 줄인다면 좀 더 의미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아니면 그 편지 형식의 글에서 깨달음만 모아 일반화하여 이 책에 담는다면 저자의 지난 과정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더 잘 드러내지 않을까 싶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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