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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전명원 지음 / 풍백미디어 / 2022년 4월
평점 :
누군가 곁을 떠난다는 것은, 궁금한 것을 더 이상 물어볼 데가 없어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떠나는 사람은 궁금함을 가져가지 않는데, 그 궁금함은 해소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으니 떠난 사람들이 그렇게도 그리운 것이 아닐까.
p.16
가면서 오천 보를 걷고, 되돌아오며 다시 오천 보를 채운다. 원천리천의 반환점을 돌며 방향이 바뀌는 풍경을 본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이러한 반환점을 만나는 순간이 분명 있다. 그 순간이 중년의 나이, 꺾어진 오십뿐은 아닐 것이다. 나이와 관계없이 우리는 종종 삶의 방향이 바뀌고, 풍경이 바뀌는 인생의 반환점을 맞이한다. 그것은 원천리천변의 산책길에서처럼 누가 정해주지 않는다. 내 의지로 방향을 바꾸며 반환점으로 삼는 것이다. 그렇게 방향이 바뀐 길에서 우리는 역시 묵묵히, 꾸준하게 걸어간다.
p.93
돈을 버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어떤 일이든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내 주머니에서 내 돈 꺼내는 일도 여러 번 망설이는 법인데 하물며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게 하는 일이 쉬울 리가 있을까.
p.96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은퇴 이후의 시간이 하루 48시간이 된 것도 아니고, 12시간으로 줄어든 것도 아니다. 나의 속도, 나의 발걸음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다른 이의 발걸음을 따를 필요도 없고, 지나온 발걸음의 속도를 다시 떠올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
p.120
내가 우선이 되려면, 내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이 늘어나는 일인 것이 맞다. 살다 보면 핑계 대지 않고 합당한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하고, 어렵고 힘들지만 어른으로 용기 내어야 하는 일도 점점 많아진다.
그러다 보니 핑계와 이유, 용기와 주책 사이에서 이기주의자의 중심 잡기는 오늘도 참 쉽지 않다.
p.230
전명원,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中
+) 이 책은 그리움, 일상, 꿈, 인생에 대한 수필을 엮은 에세이집이다. 주제를 네 가지로 구성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그리움'과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할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물어보고 싶은 순간 더이상 물어볼 곳이 없어진다는 것.
이 책에서 '죽음'과 '추억 혹은 기억'은 마음 아프고 슬프고 아련한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그리움을 되새기고 차곡차곡 쌓아가며 더 단단하게 만드는 그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저자가 표현하는 그리움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애잔한만큼 잘 살아가라고 내밀어주는 따뜻한 손 같은 느낌이 든다.
운동을 싫어하는 저자가 어느새 걷기를 즐기는 것은 자기만의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일상을 살고 걸으며 지난 날들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껏 추억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현실에 의미를 새긴다. 그런 모습이 인생이 아닐까.
낚시를 즐겼던 때로 돌아가 자신을 살펴보고, 회전교차로에서 운전할 때 조심하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앞으로 만나게 될 길에 대한 자세로 생각하고,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잊어버리지만 그걸 기억했던 순간을 또 기억하며, 지우는 것이 쉬운 시대에서 지우기 보다 새기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며 사는 것.
이렇듯 저자는 일상과 인생이란 소소하게 깨닫고 느끼고 기억하는 것의 연속이라고 묘사한 듯 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그리움의 의미를 짙고 깊게 그려내어 독자로 하여금 잔잔한 울림을 주지 않나 싶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