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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트 베니핏 - COST BENEFIT
조영주 외 지음 / 해냄 / 2022년 3월
평점 :
1년이 지났다. 그사이 재연은 모아놓은 돈을 절친대행 서비스로 탕진했다. 돈이 떨어졌다고 해서 선희와의 연락을 끊을 수는 없었다. 재연은 카드론을 이용해 금액을 충당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끝이 났다. 이제는 돈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건 곧 선희와 더는 만날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미안해, 재연아. 하지만 난 이게 직업이야. 너도 그건 잘 알잖아."
재연은 그런 선희를 잡고 눈물을 쏟아냈다. 난 언니 없이 못 산다. 이렇게 누구에게 마음을 연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하지만 선희는 매정했다. 처음 재연을 만났을 때처럼 국화차를 한 잔 따라주며 마시라고 하더니 정확히 시간을 채운 후 재연을 혼자 두고 가버렸다.
p.41 조영주, [절친대행]
하지만 막상 호텔에 들어와 보니 세상에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그리고, 안전한 기분이 드는 장소가 또 있을까 싶었다. 낯선 나라에서 여자 혼자 여행을 하면서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소는 단연코 호텔밖에 없을 것이다. 안전은 돈으로만 보장받을 수 있는 걸까. 코로나는 부자도 피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일용직 노동자들은 코로나에 좀 더 노출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p.61
ㅡ 코로나 따위 두렵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것은 두렵다.
p.68 김의경, [두리안의 맛]
떡볶이가 다 그게 그거 아니냐는 그의 질문에 그냥 말을 말지 싶어졌다. 듣기 싫은 말을 듣기 싫어하는 건 나의 나쁜 습관이었다. 세상에 듣기 싫은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지만 나의 경우 너무나 듣기 싫은 나머지 애초에 싫은 말이 나올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문제였다. 회피형이되 적극적인 회피형이라고 할까.
p.115
이대로 괜찮을까. 누군가 대답해 주면 좋겠다. 남 부러워할 것 없다고,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자기계발의 대가들이 주술처럼 반복하는 그런 뻔하기 짝이 없는 말을, 오직 나만을 위해서만 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p.129 이진, [빈집 채우기]
"예측하신 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맞아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범죄자들은 항상 자기만 생각하니까. 만약 힘을 합쳐서 방법을 찾았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겠지."
p.211 정명섭, [그리고 행성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영주, 김의경, 이진, 주원규, 정명섭, <코스트 베니핏> 中
+) 이 책에는 다섯 명의 작가들이 '코스트 베니핏'이라는 핵심어를 중심으로 창작한 소설 다섯 편이 실려있다. 코스트 베니핏은 쉽게 말해서 가성비를 말한다. 가격 대비 성능이라고나 할까. 다섯 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작품 속에서 '합리적인 선택'에 고민하고, 그 선택의 결과가 과연 효율적이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절친대행]은 일정금액을 지불하면 그에 맞게 문자, 전화, 만남 등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를 빌려주는 시스템을 소재로 삼았다. 이 작품에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절친대행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매력적인 시스템이지만 경제적인 비용과 심리적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지 않으면 결국 몸도 마음도 모두 파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성비와 가심비가 분리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격 대비 성능은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와 짝을 이룬다. 그렇기에 가성비에 따른 선택은 행복하지만 위험하다.
[두리안의 맛]은 공짜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물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인물이 등장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기가 떠나는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사치처럼 보이는게 불쾌했던 사람, 그러나 상대의 힘든 일상을 찾아보게 되며 천천히 그를 이해해간다.
합리적인 선택이란 사람들 각자 처한 상황과 입장 차이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비합리적일 수 있다. [빈집 채우기] 역시 그 부분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예비 부부가 신혼 살림을 마련하면서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의 차이로 다투게 된다. 사람마다 의미있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 누군가에게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사치스럽고 장난 같은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
[2005년생이 온다]는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 가장 빨리 돈을 모을 수 있는 장소를 탐문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읽는 내내 그들의 행동이 이해되면서도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던 작품이다.
또 [그리고 행성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인공지능이 분석하고 계획을 세워 가성비가 가장 높은 선택을 하도록 사람들을 유도하고, 그 결과 다양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합리적이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하게 다가오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다 읽고 보니 다양한 색깔의 단편 소설들을 모아서 재미있게 읽은 기분이 든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