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그녀는 더 이상 의지나 열정 같은 말에서 의미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기대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기 위해 반복 사용하던 이런 말들이 아니라, 몸의 감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가 어느 공간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서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p.6

어차피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 영주가 스스로 생각해낸 답이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이다. 영주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

p.39

목적 없이 한 대상에 이토록 긴 시간을 내어 준 적이 전에는 없었다고 생각하면서 민준은 지금 자기가 굉장히 사치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시간을 펑펑 쓰는 사치. 시간을 펑펑 쓰며 민준은 조금씩 자기 자신만의 기호, 취향을 알아갔다. 민준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을.

p.115

"부모님하고의 관계는......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더라고요.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사는 삶보단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게 더 맞지 않을까."

p.192

"제가 못 고치는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합리적으로 굴어요. 상대방이 감정에 호소해올 땐 더 이성적으로 대응하게 되고요. 무지 빡빡한 스타일입니다."

p.215

"가끔 그런 생각이 들거든. 아,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바람을 좋아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저녁 바람만 맞으면 숨통이 확 트이는 기분이 들어 얼마나 다행인가. 지옥엔 바람이 없다는데 그럼 여기가 지옥은 아닌 듯하니 또 얼마나 다행인가. 하루 중 이 시간만 확보하면 그런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우리 인간은 꽤 복잡하게 만들어졌지만 어느 면에선 꽤 단순해. 이런 시간만 있으면 돼. 숨통 트이는 시간. 하루에 10분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아, 살아 있어서 이런 기분을 맛보는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시간."

p.288

"안고 갈 수 없는 걸, 안고 가려고 했던 게 잘못이었어. 잘 산다는 게 잘 정리하면서 사는 거라는 걸 이번에 알았어. 두려워서, 남 눈치 보여서, 후회할까 봐 정리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아. 나도 그랬지. 그런데 이젠 홀가분해."

p.499

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中

+) 이 소설에는 동네 골목 깊은 곳에 서점을 열고, 삶의 여유를 지키며 삶의 목적을 찾아가는 주인공 영주가 등장한다.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걸어온 길에 언제나 성실했으나 목표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바리스타 민준도 있다. 그 둘이 동네 서점을 이끌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연을 잔잔하게 풀어낸다.

서점이 배경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작품에서 작가는 여러 책을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한다. 작가의 그런 면은 등장 인물의 언행에도 녹아있고 소설의 플롯에도 활용되고 있다.

서점을 중심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만의 상처와 고민 등을 갖고 있다. 그들은 서점의 책이나 혹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작가는 그런 면에서 책이 지닌 영향력을 부각하지 않나 싶다.

이 소설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세상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내가 정한 기준으로, 남의 눈치를 보기보다 내가 편한 모습으로, 목표를 향해 열정적으로 살기보다 삶의 여유를 갖고 사는 모습도 의미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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