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리커버 특별판)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터무니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 믿음은 아주 유용하다. 말도 안 돼, 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일에야 믿음이란 단어를 갖다 붙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단 믿으라, 그러면 말이 된다.

p.6

애고 어른이고 우린 도통 아는 게 없었다. 이런저런 생활의 지혜 같은 것은 기가 막히게 잘 알면서도, 자기 삶을 관통하는 아주 결정적인 사실은 모른 채로, 때로는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도 우리는 그럭저럭 살았던 것이다. 그런 비밀은 모르는 게 나은 때도 많다. 알아봤자 생각은 복잡해지고 골치만 아프고, 어떤 경우에는 자기 삶을 아예 부정하고 싶어지기도 하니까.

p.21

그건 아니고, 그건 힘들고, 그건 말이 안 되고,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고, 대부분의 문장이 그렇게 시작되거나 끝났다.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것 같고,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이미 진 것 같았다.

p.116

나는 내가, 너를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면 좋겠어. 근데 그게 안 되잖아. 앞으로도 쭉 안 될 것 같잖아.

구의 목소리는 냉랭했지만 구의 눈동자는 버려진 아이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네가 있든 없든 나는 어차피 외롭고 불행해.

나는 고집스럽게 대꾸했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p.194

최진영, <구의 증명> 中

+) 이 소설 속 남녀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마음으로 함께한 사이다. 어린아이였을 때는 친구처럼 손도 잡고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며 서로의 행동을 따라한다. 내색하지 않고 서로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며 공감한다. 그러다가 각각 남자, 여자로 성장하면서 서로를 위하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거리를 둔다.

그들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들은 언제나 서로를 생각했고, 그렇게 만났다가 헤어졌다가를 반복한다. 각자 힘든 상황들이 원인이 되어 헤어지지만, 그로인해 심리적인 거리는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또 그렇게 단단해진 마음으로 만난다.

이 작품은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않고 보여주는 소설이다.

읽으면서 쓸쓸하기도 했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란 이런 거구나 싶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다 아우를 수 없는 순간과 감정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소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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