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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이봐, 누구하고든 제대로 된 거래를 하고 싶다면, 이런 걸 설명할 줄 알아야 돼. 우선 이 시트를 보게. 그리고 이 발판을 봐. 이게 10년이나 된거라면 아무도 안 믿지. 난 매일 새벽 일어나 이걸 털고 또 닦아왔네."
p.8
"이 차를 몰고 또 관리해보니까, 영감님이 까다롭게 구신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주차장 입구에서 창문을 내리고 청년이 말했다.
"그래, 왜 그런 것 같아?"
아주 잠깐 청년은 말이 없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럽지 않으려고요." 청년이 말했다.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 그러신 것 같아요. 뭐에든. 누구한테든."
p.98
포기하고 싶거든 포기해라. 포기할까 말까 고민이 된다면 그런 건 이미 글러먹은 거야.
p.110
"곁에 있어야 아버지죠. 궂은 날도 좋은 날도."
p.142
"친구분에게 조언해주세요. 딸과 만날 땐 당신이 스페인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라고."
"아시죠? 스페인어는 '주어-동사-목적어' 순으로 말합니다. '내가 그동안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 오늘에야 너를 찾았네. 미안하다.' 이게 아니라, '내가 미안하다. 오늘에야 너를 찾아서.' 그렇게 말해야 하는 거예요."
p.177
'누가 그러는데, 새로운 언어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준단다.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네 삶에.'
p.312
허태연, <플라멩코 추는 남자> 中
+)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은퇴하기로 마음 먹은 남자가 과거 자신이 썼던 청년일지의 내용을 확인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거의 70을 바라보는 노인이 실천하기에는 어려운 내용들이 적혀 있지만, 그는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하나씩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망설이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하지만 결국 어떤 선택이든 한다.
굴착기 기사로 성실하게 일해온 남자는 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지나온 자기 생을 돌아본다. 알코올독자이기도 했고,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기도 했다. 전처의 딸은 만나지 못하나 마음 한켠에 담아두었고, 예전에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떠올린다. 그 바탕에는 그가 젊었을 때 적어둔 '청년일지'라는 노트가 있다.
주인공은 그 노트 속 내용들을 보며 플라멩코를 배우고, 스페인어를 배우며, 오랫동안 보지 못한 딸과 만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남자의 인간관계는 조금씩 넓어지고 그 과정에서 남자는 배우고 깨닫게 되는 것이 생긴다. 이 작품은 흡입력이 좋아서 단숨에 읽을 수 있다. 때로는 재미있고,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후반부에 살짝 지루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대체로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