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애주가의 고백 - 술 취하지 않는 행복에 대하여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이덕임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술에서 기인된 감정의 바닥을 기어 다니고 삶 자체를 훼손하고 있을 때 금주는 시작된다. 일종의 마지막 보호 본능이 작동된 셈이다. 하지만 그 본능을 누를 만큼 술의 힘은 더 강력하다.

누군가는 이해하기 어려울 거다. 삶에서 느끼는 고통과 고독에 빠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일. 그 무게가 너무나 커서 일상의 작은 절망감이나 실망스런 일쯤은 가벼운 에피소드조차 넘길 힘이 남아 있지 않아 별 것 아닌 양 치부할 도구가 술밖에 없다. 왜 힘든지, 왜 이런 상실감이 드는지 그 이유를 따지는 일도 점점 어려워질 뿐이다. 안타깝게도 감정과 사고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나를 규정짓는 유일한 주체인 내면이 술로 인해 망가졌기 때문이다. 악순환, 끝없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p.18

지금 내 삶에서 술이 차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솔직한 대화도, 어떤 질문이나 상의도 하지 않았다. 결국 술을 마시는 세월이 쌓일수록 나는 더 많은 양의 술과 더 많은 날의 술을 마시는 일이 당연해졌다.

작은 노력들과 반성, 술이 내 삶에 문제를 일으키는 여러 증거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나는 여전히 술을 마셨다.

p.38

우리 모두는 자신과 주변 사람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알코올중독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갖고 있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p.58

'단지 오늘만'이라는 구호에 따른 심리적 효과는 사실 매우 크다. 술을 계속 마시면 육신과 정신이 파괴된다고 아무리 경고해도 계속 마시려는 욕구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녔다. 의지나 결심의 힘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는 게 현명하다.

p.112

'모든 사람은 가끔 미칠 때가 있다. 하지만 다행히 모두 한꺼번에 미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언제나 위안의 말을 건네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

p.124

규칙적인 음주는 두뇌의 연결망을 재배치해 그 상태로 지속되게 하는데 천천히 우리의 성격도 변하게 만든다. 구체적으로 알코올은 두뇌의 전달 활동에 균형을 깨트리고 신경세포들을 교란시킨다. 성격을 변화시키고 정작 자신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말이다.

p.155

알코올중독이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는 사람조차도 그것이 자신에 대한 방치나 의지력의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즉 원하기만 하면 '정상적'으로 마시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모두 관리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부분의 사람은 술을 오랫동안 마시면 두뇌가 다른 모든 것을 방치하게 만든다는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아직은 이 병에 걸려 있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일을 방치하고 술만 마시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179

다니엘 슈라이버, <어느 애주가의 고백> 中

+)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 언급한 '나는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알코올중독'이 진짜 알코올중독과 동떨어진 관념일 수 있다는 의심과, 습관적으로 마시는 술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절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언급한다. 규칙적인 음주가 두뇌의 연결망을 재배치해서 우리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술을 마시는 것이 건강에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내면의식 혹은 성격까지 영향을 줄꺼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저자는 성격이 변한다고 말했지만 그것을 비롯한 모든 것들에 영향을 줄 것이다.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두뇌의 작용이, 자전거 타는 법을 기억하는 두뇌의 작용과 다르지 않다는 말도 놀라웠다. 이 책은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 그리고 현실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돌고 도는 악순환의 반복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깊이 와 닿았다.

술을 즐기는 애주가라면, 혹은 내가 알코올중독일 수 있다는 농담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술을 줄여야 하는가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그 어떤 변화나 결심에 도움이 된다기 보다, 적어도 현실적으로 내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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