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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 한자경의 일체유심조 강의
한자경 지음 / 김영사 / 2021년 3월
평점 :
일상의식의 논리법칙 또는 개념적 규정성 너머 불교가 바라본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유동하는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계선은 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지요. 즉 있고 없음이 함께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있고 없음을 함께 넘어선 것, 한마디로 유와 무 너머의 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41
의식이 보는 의식대상으로서의 세계(현상)는 이것과 저것, '인 것'과 '아닌 것', 유와 무가 공존하면서 자유자재한 물화가 일어나는 세계이지요. 불교는 바로 이와 같은 의식적 분별 이전의 세계에 주목하며, 그 세계를 밝히고자 한 것입니다.
p.53
즉 일체는 다른 것을 인연으로 해서 존재하는 것, 다른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난 것, 연기의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불교가 말하는 연기론입니다. 연기론은 실체론의 부정입니다.
연기론에 따르면, 인간이든 물질적 사물이든 모두 자신 안에 각각의 개별적 실체성, 자기 본질, 자기 자성, 자아, 아트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무아'이지요. 따라서 연기론은 곧 무아론입니다. 일체가 자기 본질이 없는 무아이기에,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자기 아닌 것을 통해 비로소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p.59
이와 같이 4념처관은 몸의 실상을 여실지견한 후, 몸의 느낌과 마음의 느낌을 구분하여 알아차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속 번뇌를 알아차리고자 합니다. 마음 속 욕망과 분노를 알아차림으로써 부지불식간에 탐심과 진심에 이끌리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지요. 알아차림으로써 멈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32
마음은 자기지가 있으므로, 마음에 낀 먼지(번뇌)와 상관없이 마음 자신을 스스로 압니다. 그러니까 마음인 것이지요. 마음이 스스로를 아는 그 마음이 바로 본래 마음, 번뇌 없는 마음, 마음 자체입니다. 그렇게 마음은 번뇌와는 다른 차원의 마음, 번뇌가 범접할 수 없는 마음이기에 '본래 무일물'이라고 한 것이지요.
즉 마음 자체는 본래 청정한 무구의 마음, 부처의 마음이라는 것이지요. 그 마음은 수행을 통해 번뇌가 모두 멸한 이후에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번뇌에 물든 중생 안에 이미 본래 부처의 마음으로, 무구의 청정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p.236~237
한자경, <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中
+) 이 책은 전문학술 서적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불교를 전공한 저자가 불교의 핵심 개념과 마음의 상태를 연결해서 강의한 것 같다. 끈기가 요구되는 책이지만, 천천히 읽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논리적인 해설과 쉬운 비유 덕분이다. 한 두 문장으로 표현되던 불교식 사유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책이다.
이것 저것 정의내리거나 정의내릴 수 없거나 하는 공, 결국 자아는 무아였고 그 무아는 세계에 의해 연결된다는 연기, 알아차림과 본성을 보려 노력하는 수행, 우리가 집착하며 사는 세계는 가상이고, 자기 안의 진정한 마음을 깨달아야 하는 일체유심조, 텅 빈 고요한 마음과 늘 그 자리 우리 안에 있는 맑은 마음을 보는 것 등등 이 책에서 배운 것이 많다.
저자의 설명을 정리하는 것도 어렵지만, 불교의 세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간 우리가 한 두문장으로 들어온 불교의 진리를 논리적으로 풀어서 설명해준 책이다. 쉽지 않아서 읽는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마음이 든든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