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손님
히라이데 다카시 지음, 양윤옥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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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에 대한 고찰로 마키아벨리는, 운명이란 인생의 반 이상을 지배하는 것이며 그 나머지는 거기에 대항하려는 인간의 역량(비르투)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운명이라는 것을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여신, 혹은 언제 범람할지 모르는 강과도 같다고 상상했다.

p.26

- 내가 치비를 껴안지 않는 것은,

이라고 참새를 땅에 뭍어준 뒤에 아내가 말했다.

- 동물이 자기 좋을 대로 하는 게 너무 흐뭇하기 때문이야.

- 나한테 치비는 고양이 모습을 하고 있는 마음 잘 통하는 친구야.

그러면서 관찰이야말로 감상에 빠지지 않는 사랑의 핵심이다, 라는 어느 사상가의 잠언을 가르쳐주었다.

p.53

고양이는 보호자에게만 마음을 허락한다, 그래서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은 보호자 앞에서만 내보인다, 라고 들었다. 고양이를 소유하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단지 기르는 상태만을 실제처럼 맛보고 있는 부부에게 치비는 자신의 가장 어리광 부리는 모습을 내보인 적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도리어 치비는 보호자조차 알지 못하는, 아양 떠는 일 없는 순진무구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치비에게서 받은 신비한 느낌의 유래는 간단히 분석하자면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p.94

히라이데 다카시, <고양이 손님> 中

+) 이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찾아오는 옆집 고양이와 '정'을 쌓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것이 우정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관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인간애와 동물과의 교감을 드러내는 단어로 '정'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정원을 사이에 두고 몇 집이 함께 살고 있는 공간이 있다. 주인집 할머니는 동물을 싫어하지만 옆집 아이가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하자 못이기는 척 그냥 내버려둔다. 그 아이가 새끼 고양이를 기르면서 고양이는 정원을 자신의 영역인 듯 마음껏 뛰어 논다.

그러다가 부부의 집에까지 오게 된다. 처음에는 잠깐 들렀다가 돌아갔는데 조금씩 조금씩 와서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그러자 그와 아내는 고양이가 들어올 수 있는 입구도 만들어 놓고, 녀석이 쉴 수 있는 공간과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마련해놓는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고양이를 안지 않는다. 어찌보면 그게 아내만의 사랑법이 아닐까 싶다. 묵묵히 챙겨주고 흐뭇해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갑작스레 이별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꽤 마음이 아팠다.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었다고 해서 심리적인 거리까지 사라지겠는가. 그때 아내의 울음소리가 내게도 들리는 기분이었다. 이 소설에서 고양이 치비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볕과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기분 좋아지는 볕. 만질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해지는 볕.

모처럼 단숨에 읽은 소설이었다. 고양이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고양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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