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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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이 존경과 공포의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지녔다는 점에서 다분히 정치적인 함의를 지닌 단어이기도 했다. 두려움은 지배를 용이하게 하고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토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존경을 얻지 못하거나 혹은 일시적으로 얻었던 존경을 철회당한 지배자들은 어김없이 공포를 행사해왔다.

p.62

기준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할 수 없는 거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p.266

실체가 분명한 불안에서 비롯된 증오였다. 관리관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최민석을 잡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정보 계통의 말직으로 썩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따지고 보면 그가 불안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p.327

태주는 분노했지만 누구에게 증오를 퍼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미워할 수 있고 미워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자신뿐이었다.

p.456

그는 이곳에서 9년을 보낸 후 지금을 돌아본들 무엇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현명해지고 조금 더 경솔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깨달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생각과 행동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달라지는 것은 있겠지만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p.486

이정명, <선한 이웃> 中

+)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소설은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모티프로 삼아 쓴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에는 운동권을 잡으려는 공작원, 실전에 있지는 않지만 뒤에서 형사들을 조련하는 관리관, 운동권의 실세인지 연극을 하는 예술가인지 헷갈리는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각자의 삶에 충실한다.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그들은 각자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 그렇기에 그들의 시선에서는 누구 하나 나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쁜 사람은 가까운 곳에 분명히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정의'이며 무엇이 '예술'인지, 그리고 누가 '이웃' 혹은 '벗'인지 돌아보게 된다. 치밀한 구성이 흥미로우나 연극 무대를 묘사하거나 대본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살짝 지루할 수도 있다. 어쨌든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며 마무리되기에 다 읽고 나서는 천천히 곱씹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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