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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평점 :
"그럴 줄 알았지. 스토너는 대학을 커다란 저수지처럼 생각하고 있을 걸. 도서관이나 유곽처럼 말이야.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자신을 완성해줄 물건들을 고를 수 있는 곳, 모두가 같은 벌집의 작은 일벌들처럼 힘을 합쳐 일하는 곳. 진실, 선함, 아름다움, 이런 것들이 모퉁이 너머 바로 다음 복도에 있다는 것이지. 아직 읽지 못한 바로 다음 책, 아니면 우리는 반드시 그 서가에 이를 것이고, 그러면..... 그러면....."
p.48
"그러니까 신의 섭리인지 사회인지 운명인지, 하여튼 그것이 우리를 위해 이 누옥을 지어준 거야. 우리가 폭풍을 피할 수 있게. 대학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걸세.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학생들이나 이타적인 지식추구나 그밖에 사람들이 말하는 이런저런 이유를 내놓고 평범한 사람들, 그러니까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몇명 받아들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저 보호색일 뿐이지. 중세 교회가 평신도는 물론이고 심지어 신에 대해서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 가장을 하는 걸세.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 반드시 그래야 하니까"
p.53
죄책감이라는 편안한 사치품을 자신에게 허락할 수는 없었다.
p.381
존 윌리엄스, <스토너> 中
+) 이 책에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의 인생을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담고 있다. 농부의 아들로 대학에서 농업 전공으로 입학한 그가, 영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전공을 바꾸고 인생의 목표를 바꾼다. 그는 영문학을 공부하며 석사,박사 과정까지 졸업하고 그 대학의 교수가 된다.
그 사이 사랑하는 여자와 가정을 이루나 불안하고 불편한 기류가 흐를 때가 많다. 중간에 스무 살쯤 어린 강사와 불륜에 빠지나 사회적 시선으로 그 관계를 끝낸다. 그리고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 즉 대학원에서 가치관이 다른 교수와 부딪치며 힘든 시기를 겪는다.
음, 이리 적고 보니 스토너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었는데, 나는 이 책을 몇 시간동안 단숨에 읽었다. 평범한 스토리와 일관된 문체였는데 묘하게 흥미로웠다. 아마도 그 일관된 문체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스토너가 대학원생일 때 친구들과 나눈 대화에서도, 교수인 스토너가 동료 혹은 제자들과 나눈 대화에서도 대학과 학문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구절들이 와 닿았다. 또한 심리 혹은 어떤 상황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낭만적인 문장들이 은근히 좋았다.
평범한 듯 하지만 깊이가 있는 소설이다. 1965년 발표작이라고 하는데 요즘에 쓰여진 소설 같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불안하지만 설레는 마음이나, 사랑과 가족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의 시선을 잘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