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으로 산다는 것 - 조선의 리더십에서 국가경영의 답을 찾다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광해군은 연산군과 함께 '조'와 '종'으로 칭해지는 조선의 다른 왕들과는 달리 '군'이라는 왕자 시절의 호칭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의 묘도 '릉'이라고 칭해지는 다른 왕들의 무덤과는 달리 '광해군 묘'로 지칭되고 있다. '묘'라는 이름에 걸맞는 쓸쓸한 모습으로 현재에도 거의 찾는 이 없이 방치된 상태로 남아있다. 연산군이야 검증된 폭군이므로 그리 억울할 것도 없겠지만 광해군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가 수행했던 강력한 전란 복구 정책이라든가 실리적인 외교를 통하여 조선이 불바다가 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했던 국제감각은 오늘날에도 재평가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p.156

그러나 숙종의 본 모습은 적장자라는 정통성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재위하면서 왕권을 본격적으로 행사한 '강한 왕'이었다.

숙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방 등의 각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펼치며 왕조의 안정을 구축해나갔다. 송시열과 같은 거물 정치인을 제거한 대담한 정치력, 성리학 이념에 의한 역사 바로 세우기, 경제와 국방 현안에도 소홀하지 않는 실용 중시 능력 등은 왜란과 호란의 상처를 딛고 조선 사회가 본격적으로 증흥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놓았다.

p.277

사도세자의 추승과 관련하여 1793년 6월 정조는 그와 좌의정 체제공만이 알고 있던 비밀 서류인 '금등'을 공개한 것도 주목된다.

결국 금등은 '진심이 담겨 있는 비밀 서류'를 뜻하는 용어로, 이때에는 영조가 사도세자의 처벌을 후회한다는 내용을 작성하여 비장해둔 서류를 의미했다. 공개되어서는 안될 서류를 정조가 공개한 것은 영조와 사도세자 두 사람 모두에게 허물이 없음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p.344

대원군이 민치록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인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명문가 집안의 후예로서 안동 김씨의 위세를 누를 수는 있지만 집안이 단촐하여 횡포를 부릴 국구(임금의 장인)가 없다는 점, 대원군의 부인이 민치구의 딸로서 왕비와는 자매가 되는 관계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p.479

신병주, <왕으로 산다는 것> 中

+) 이 책은 조선의 왕들이 행했던 정책과 가족사 등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의 27명 왕 대부분을 순서대로 제시하며, 그들이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가족사, 그들이 시행했던 정책, 그리고 그 시기 중요한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대부분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가끔 후대의 재평가가 요구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저자의 생각도 서술한다. 이 책은 어렵지 않게 쓰여져서 조선의 왕들에 대해 쭉 살펴보고 싶다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들에 새로운 사실들이 더해져서, 역사적 인식의 깊이가 조금은 깊어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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