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더디 세계문학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이은정 옮김 / 더디(더디퍼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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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내게 가끔 보인 쌀쌀맞은 인사나 냉담한 행동은 나를 멀리하려는 불쾌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 하는 인간에게, 나는 다가올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만두라는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남이 보이는 반가움과 그리움에 응하지 않았던 선생님은 사람을 경멸하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경멸했던 것이다.

p.23

"그런데 나쁜 사람이라는 종류의 인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나? 그런 판에 박힌 악인이 세상에 있을 리 없지. 평상시에는 다들 착하지. 적어도 다들 보통 인간이라네. 그런데 이떤 일이 생기면 갑자기 악인으로 변하기 때문에 무엇운 것일세. 그래서 방심할 수 없는 법이지."

p.134

"나는 그들만 증오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증오하고 있으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p.145

나는 인간이란 덧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천성적인 경박함을 가진 덧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p.173

아버지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놀고 있다고 속단한데 비해 형은 능력이 있으면서도 빈둥거리고 있는 것 자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이기주의자는 안 돼. 아무 것도 안 하고 산다는 것은 교활한 거야. 사람이라는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야지."

p.242

나쓰메 소세키, <마음> 中

+) 소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몇 시간을 멈추지 않고 읽어본 것이 꽤 오랜만이다. 이 책을 처음 1/4 정도 읽었을 때는 그저 주인공이 우연히 마주친 어떤 사람을 '선생님'이란 호칭을 써가며 가까워지려는 이유가 궁금했고, 그 둘이 또 우연히 가까워지면서 그들의 만남이 이 소설을 어떻게 끌고 갈지가 궁금했으며, 특별한 갈등 없이 어떻게 이렇게 긴 소설이 있을 수 있나 싶어 뭐라도 더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처음에는 밋밋하게 다가왔는데 읽을수록 깊이 빠져들었다. 이 소설은 3부가 결정적인데 선생님의 유서를 읽으면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선생님이 인간을 멀리한 이유를 친척의 배신으로 비롯된 것처럼 극을 진행했으나 사실 결론적으로 선생님이 인간을 증오하는 것은 자기 자신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다 읽고 난 뒤 다시 앞에서부터 그들의 결정적인 대사를 곱씹어볼 때 더 큰 울림을 준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증오, 천성적으로 경박한 인간이라는 종족, 타인에 대한 복수는 결국 인간에 대한 복수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복수였다. 이 소설에서 '인간'은 다양한 부류의 인간을 모아 놓은 집합체면서, 그 개개인을 가르키는 개별적 용어처럼 사용되었다.

인간이 느끼는 수치심이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른데, 이 소설에는 그 모습을 다양하게 잘 담고 있다. 격정적인 감정의 표현이나 화려한 수식어 없이 단조로운 문체로 인간의 섬세한 감정과 심리를 아주 잘 담고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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