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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의 전갈 ㅣ K-픽션 5
최민우 지음, 전승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9월
평점 :
블랙은 그가 어디서 내릴지, 내린 다음 어디로 갈지, 밤에는 무엇을 할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더 이상 그걸 알아야 하는지 확실치 않다는 데 있었다.
4%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종교랑 똑같은 거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 그래도 나는 떳떳해야 돼. 그게 안 될거 같으면 지금 짐 싸서 돌아가."
10%
그는 아주 잠깐, 세상의 종말이란 모두가 죽어버리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홀로 잊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17%
최민우, <이베리아의 전갈> 中
+) 이 소설은 상명하복 체계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 국정원 직원들이 등장한다. 질문하고 싶어도 하지 않고, 질문을 해도 답을 주지 않는 시스템. 그 체제 안에서 내적 갈등을 느끼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 본래의 자유의지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고 있다.
닫힌 조직 체계 내에서 길들여진 인물들은 연륜이 쌓이는만큼 그간 참아온 욕망을 뿜어낸다. 그것이 자기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이든, 그간 자기가 믿어온 조직에 대한 분노이든 말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인물은 그것을 보며 망설이고 고민하다가 결국 조직이 원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조직의 명령이라면 의문이 들어도 하게 되는 선택, 그것을 통해 인간의 동물적인 면모를 보게 된다. 맹목적으로 길들여지는 것. 반면 가족을 잃는 아픔을 통해 체제에 저항하는 인물을 그리며 자유의지를 알아차린 인간적인 면모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