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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의 모든 것 Everything About Chess ㅣ K-픽션 16
김금희 지음, 전미세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11월
평점 :
선배는 서울 출신이면서도 서울에서 자취했고 왜 혼자 사느냐고 물으면 다른 설명 없이, 가족에 대해서라면 기대가 늘 배반당했다고만 해두자, 라고 해서 나를 매료시켰다.
5%
국화는 알고 보면 선배가 굉장히 유아적이라고 했다. 자기 말만 떠드는 것, 타인을 박하게 평가하는 것,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평가에는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 애정을 갈구하는 것, 오토바이를 샀다가 중고로 팔고 또 다른 오토바이를 타는 것, 소비에 열을 올리는 것, 거기에는 돈부터 사람까지 다 해당하는 것. 그리고 국화가 가장 못 견뎌한 건 함께 무언가를 먹고 더치페이 할 때 잔돈을 돌려주지 않는 선배의 버릇이었다.
국화가 입을 열 때마다 선배는 힙하고 쿨한 우울한 청춘에서 어딘가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흔한 20대로 달라졌다.
그 모든 것을 참아내는 것이란 안 그러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절박함에서야 가능한데 그렇다면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7%
이기는 사람, 부끄러움을 이기는 사람이 되겠다고. 강심장이 되겠다는 뜻이냐고 했더니 아니 그게 아니고 이기는 사람,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상태로 그걸 넘어서는 사람, 그렇게 이기는 사람.
21%
김금희, <체스의 모든 것> 中
+)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과 다른 언행을 하는 선배를 부러워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는 하지 못할 행동이나 말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선배를 보며 멋지고 용기있고 부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그 선배에게도 강적이 있다. 선배의 언행을 또 아무렇지도 않게 비판하고 직언하는 국화라는 인물이다.
저자는 이들 인물 간의 관계를 먹이사슬처럼 그려낸다. 서로 먹고 먹히는 그런 먹이사슬이 아니라 서로 자신과는 다른 태도나 자세로 삶을 사는 상대방을 부러워하면서 날카롭게 지적하는 모습의 사슬이다. 그들이 그렇게 성장하면서 시간은 흐르고 그들은 이제 자기 나이대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간다.
현실에 타협할 수밖에 없는 삶. 국화의 말대로 '부끄러움을 이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현실은 그 부끄러움을 생각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만들었다. 예전의 국화라면 그런 게 어딨냐며 따지고 물었을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입을 다문다. 주인공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또 우리 독자는 그런 주인공의 모습까지 바라보게 된다. 작가는 이 인물 구도를 적당한 타이밍에 적절히 묘사해냈다. 잘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하지 못하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 그런데도 누군가는 해내는 것 등에 대해 부러워한다. 선망의 대상이랄까. 저자는 바로 그런 인간 관계의 면모를 납득할 수 있도록 잘 그려냈다. 이 소설은 그들이 변해가는 모습보다 그들의 매 순간에 주목하게 만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