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판 Arpan K-픽션 2
박형서 지음, 김소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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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찾아오지 않는 그 뜨겁던 청춘의 시간을 자극이라곤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오지의 적막 속에서 보냈단 말인가. 어쩌면 그건 거꾸로, 내가 그즈음 막 작가로 데뷔하여 과도한 열정에 휩싸였던 탓일지 모르겠다. 남과 다른 삶, 남과 다른 생활이 바로 예술가의 임무기 때문이다. 설령 그 길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걸어가는 반대쪽이라 할지라도, 초월에 대한 갈망은 주저 없이 직진의 발걸음을 내딛게 만든다.

27%

예술은 만인의 것이 될 수 없다. 예술에 필요한 감각은 태어나거나 혹은 훈련되어야 하는데, 누구나 그럴 기회를 잡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청중들의 저열한 질문은 악의도 우월감도 아닌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굳이 화를 낼 필요까지는 없었다.

28%

중요한 건 기교가 아니었다. 타인의 자유로운 영혼에 간섭할 고상한 메시지도 아니고, 미래를 포장하는 허황된 웅변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야기 자체의 즐거움이었다.

28%

박형서, <아르판> 中

+) 이 소설 속 주인공은 막 소설가로 데뷔했을 때 태국과 미얀마의 어디 쯤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아르판'이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글쓰기에 대한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생각해온 글쓰기는 아르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흔들리게 된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나 할까.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아르판의 소설을 자신의 소설로 바꾸어 써서 큰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판을 한국에 초대하여 그에게 자신의 소설 이야기를 들려주고 깜짝 놀라는 아르판을 향해 모방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내게는 좀 충격적인 내용의 소설이었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늘 '표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읽은 수많은 책들의 어느 구절을 나도 모르게 쓸 수도 있기에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 혹은 합리화 하기 위해 아르판을 세계작가전에 초대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사람들이 모르는 그의 소설을 자기가 썼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 문화 전파 혹은 문화 확산이지 않겠냐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 읽는 내내 좀 불편했지만, 주인공의 절박함이 이해되기도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표절 앞에서는 그 어떤 합리화도 옳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탐나는 이야기와 탐나는 문체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는 것은 예술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너무 비겁하니까. 어쨌든 이 소설의 구성은 꽤 탄탄해서 읽는 내내 흥미로웠던 것 같다. 충격적인데 또 엄청 잔잔한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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