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 - 모르는 영역
권여선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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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실수인지 고의인지 아빠가 어떻게 알아? 한번 이렇게 했는데 먹히면 앞으로 또 이렇게 해도 되는 줄 안다고. 난 사람들 그런 게 싫다고."

"이 사람들 상습적으로 바가지 씌우고 그럴 사람들 아니야. 또 한 번인데 어때? 한 번은 그냥 넘어가"

"한 번이니까 괜찮다....." 다영이 팔짱을 꼈다. "한 번이니까 괜찮다. 그냥 넘어가자.....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네요? 그렇게 넘어가면 마음이 좋으세요? 한 번은, 한 번은 ....... 해도 됩니까?"

19% -권여선, [모르는 영역]

함께 산 지 일주일 만에 선은 가만히 앉아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육체노동을 할 때처럼 열량이 소모되고 피로가 쌓인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매달 월세 대신 매일 귀를 내주고 있던 셈이다.

단점을 고치지 못해도 정확히 알고는 있다면 불행 중 다행한 일일까, 아니면 단점을 알고 있는데도 고치지는 못하니 더 불행한 일일까, 쓸데없이 남의 인생을 걱정하고 있는데 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인간관계가 피곤한 것은 서로 단점을 숨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단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보여주면 관계가 더 진솔해진다.

50% -김미월, [연말특집]

언어는 이상하군. 이 상황을 어떻게 다행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다행도 불행도 아닌 어느 지점, 지독하게 재수가 없는 지점을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75% -최옥정,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

난 항상 열심히 살았어.

나는 하민이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을 하는 지 궁금했다. 자기를 몰아붙이듯이 살았다는 것인지, 별다른 재미없이 살았다는 것인지, 열심히 산다는 게 그녀에겐 올바르다는 가치의 문제라는 것인지, 삶의 조건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는 것인지 말이다.

80% -최은영, [아치디에서]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 2018> 中

+) 오랜만에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어떤 상이든 수상작품집을 읽으면 수상작과 다른 작품의 차이가 보이는 편인데,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들은 그렇지 않았다. 골고루 비슷한 수준의 작품들을 읽을 수 있었고, 읽는 내내 소설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아, 소설가의 연륜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다랄까.

수상작 권여선의 <모르는 영역>을 읽고 내가 느낀 느낌을 그 뒤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자기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두 가지 느낌일꺼라고. 이거 뭐야. 하면 실패한 것이라고. 아, 뭔지 알겠다 하는 반응도 실패라고. 이게 뭐지? 하고 생각하는 단계에 머물러야 한다고. 나는 맨 앞과 맨 뒤 반응이 동시에 왔으니 어떤 독자일까.

권여선은 여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고 했다. 스스로 복제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 소설쓰기를 관둘꺼라고 했다. 그 인터뷰 글이 기억에 남는다. [모르는 영역]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드러낸다. 각자 상대방을 대할 때 어느 정도 견뎌내는 감정의 덩어리들이 문장 하나 하나에서 느껴진다. 아버지의 시선으로 구체적으로 그린 것이 의미있다고 본다.

김미월의 [연말특집]은 이 소설집에서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다른 것들은 뭐랄까. 좀 무겁다고 할까. 이 소설의 내용도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나, 주인공의 상황과 입장을 위트있게 쓰고 있기에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번 수상작품집의 수준은 전체적으로 고른 편이다. 백석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김연수의 글도, [전갱이의 맛]에서 다시 한번 여운을 담은 권여선의 글도 저자의 필력들이 고스란이 다가왔다. 작가들의 필력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하게 깨닫게 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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