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의 계절
온다 리쿠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서평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일종의 성장 소설로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소문과 실종에 얽힌 진상 파악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온다 리쿠 소설답게 사건의 진상이 범인을 잡는 형사물, 탐정물과는 전혀 다른 결말을 맞습니다. 배경이 되는 곳은 도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입니다.

 

인구가 15만 명 정도 되는 소도시. 도후쿠 지방에서 가장 넓은 현의 내륙부에 위치한 I시 중심부에 있는, 너무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그런 도시 '야츠'. 갇힌 듯한 느낌을 받는 아이들은 도쿄를 선망하며 떠나가지만 결국 90% 이상이 고향으로 돌아오고야마는 그런 묘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 밖에도 뭔가 알 수 없는 일들은 전통처럼 있어왔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정기적으로 퍼지는 소문을 통한 유행이나 사람이 실종되는 문제입니다. 5월 17일에 기사리기 산에 UFO가 나타나고 엔도라는 아이가 끌려간다는 소문이 일제히 퍼지게 됩니다. 흔히 어린 시절에는 소문이라던가 괴담같은 것들이 유행처럼 번지는 일이 많기는 한데요. 그저 소문으로 흘러가버리고 마는 경우와 다르게 이 마을에서는 정말 실종 사건이 일어나고 맙니다.

 

너무도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여고생들은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 설문 조사를 실시하여 대체 어디에서 소문이 발생했는지를 찾아보지만 일종의 패턴만을 알게될 뿐 설문을 통해서 진상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온다 리쿠 소설답게 영능력이랄지 그런 몇 인물도 등장하고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음을 회상하는 이야기들도 종종 삽입됩니다.

 

형사물이나 탐정물의 추리 소설의 경우 이야기는 상당히 단순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범인의 트릭이나 작가의 트릭이 아무리 변화무쌍해도 우선 사건이 일어난다는 점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범인은 붙잡히는 것이 최대 목표이지요. 그러나 온다 리쿠의 소설은 분명 추리물에 속하는 형식을 갖고 있지만 단순히 살인 사건이 일어나서 범인을 찾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이 소설이 그런 전형적인 형사물, 탐정물이었다면 실종자를 찾아나선다던가 시체가 등장했겠지요. 그러나 온다 리쿠 소설 속의 이야기는 그것은 단 하나의 매개체에 지나지 않고 좀 더 커다란 흐름이랄지 그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황에 주목합니다.

 

그러다보니 등장 인물이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도 결국 방관자일 뿐이고 하나의 말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물론 좀 더 중심적인 캐릭터가 등장해서 활약하는 두드러지는 소설도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단지 그 정황을 드러나게 한 인물일 뿐입니다. 작가 역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딱히 어떤 캐릭터에도 애착은 가지 않는다고 인터뷰한 바가 있습니다.

 

덕분에 이 소설도 역시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타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갑니다. 그러나 소설은 반 이상의 분량이 지나갈 때까지도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가늠할 수 없게 합니다.

 

소설이 아닌 실제 일상을 기록해둔 듯이 이야기는 방향을 바꾸어 아이들의 귀여운 유행에 대해 써내려가고 있지만 이것은 뭔가 귀엽다고 할 수준을 넘어선 주술적인 바람을 담고 있는 행위로 점점 짙어져가고 또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듯 새로운 사건과 소문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단순히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소문 이야기가 아니라 뭔가 의도를 품고 있는 진상이 뒤에 있는 것이 아닐지 추측하게 됩니다.

 

결국 이 소설의 모든 진상이 드러나고 일련의 소문이나 유행에 관한 내막도 드러나게 되지만 소설의 목표는 그곳에 있지 않습니다. 단순한 사건의 해결이 문제가 아니라 좀 더 나아가서 이 소도시에 사람들이 돌아오는 이유와 이 야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게 됩니다.

 

한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진정한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단순한 계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음을 알려줍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이 땅 위에 서서 살아가는 것,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을 직시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요.

 

10대 때, 무언가 새로운 것을 열망하면서 살아가지만 결국 그 모험이나 시도들의 끝엔 결국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것을 더 좋아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물질적인 문제나 명예적인 측면이 아니라 다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것, 아무것도 아니고 늘 곁에 있을꺼라고 생각한 그 보잘 것 없어 보이던 그것을 자신이 만들어내어 새롭게 얻고자 하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특히 이런 작은 도시에서 살아온 아이들에게 대도시의 거리감이란 무척이나 클테지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공존하는 것을 그리워하면서도 꺼려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 애증의 관계에서 비로소 사회가 존재하고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 것도 하지않고 그저 이 아츠가 좋고 이대로 그저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미도리는 어쩌면 가장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열망하는 욕구를 지닌 그들은 이 강을 넘어서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이 무언가 정체되어 있는 것 같고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아서 결국 강을 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강은 아츠를 넘어서는 새로운 곳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아츠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곳인데 말이지요. 갈 수 있지만 가지 않는 사람과 가야만한다고 여기는 사람의 차이는 실로 큽니다. 마치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자하는 열망을 지닌 이들이 더더욱 성장하고있는 것 같고 더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의 정답을 아는 것은 그 반대인 쪽이지요. 그리고 그들의 결말은 결국 미도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의 아츠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이 소설의 처음을 읽은 사람이라면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0%는 어쩌면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한채 그저 방황하고 있는 실종자가 아닐런지요. 청소년기의 자아 정립을 이렇게 그려낸 온다 리쿠에 대해서 다시 한번 놀랐고 표현 방식도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평범한듯 10대들의 소문에 대한 접근을 풀어낸 이야기의 앞부분도 다 읽고 보니 또 새롭게 보입니다.

 

이 아츠란 마을은 어쩌면 뫼비우스의 띠 안에서 영원히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것이 변해도 결국 인간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듯이 말이지요.

 

 

 

 

 

책 정보

 

구형(球形)의 계절

Kyuukei no Kisetsu by Riku Onda (1994)

지은이 온다 리쿠

펴낸 곳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년 8월 23일 초판 1쇄 인쇄

2007년 8월 30일 초판 1쇄 발행

옮긴이 임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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