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 오페라
아가와 사와코 지음, 맹보용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서평

 

서른 다섯살의 루이는 이모인 토바짱과 함께 어릴 때부터 살아왔습니다. 엄마가 죽고 남자 혼자 아이를 못키운다고 해서 결국 이모와 살아온 루이이지만 부모님을 그리워한다던가 같은 서글픈 감정은 이 소설 안에서 흐르지 않습니다.

 

쿨하다고 할지 좀 느리다고 할지 차분하달지, 그런 루이는 가난하지만 토바짱의 밝음 안에서 그런 성격으로 잘 자란 것이 아닐까 싶은 일화들이 이어집니다. 살이 아주 조금밖에 붙지않은 뼈를 저렴하게 사와서 수프를 만들어주는 이야기는 이 소설의 전반을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목부터 그러니까요.

 

늘 곁에 있던 토바짱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루이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빈자리를 느끼는 루이에게 이상한 노인이 등장합니다. 화가라고 하는 그는 어느 날 나타나 알게되고 또 다른 장소에서 알게된 건축잡지 일을 하는 코스케와 함께 그녀의 집에서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식사엔 꼭 수프가 있어야한다는 규칙과 함께 이어지는 이 동거 생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는 되려 루이 자신보다도 더 이 집에 어울리는 것 같은 두 사람 때문에 편안함을 끌어내는 분위기가 됩니다. 루이의 감상보다는 그들을 관찰하는 듯한 이야기이지만 글 자체가 주는 편안함이 어찌나 큰지 평온한 기분으로 읽게 됩니다.

 

이런 기묘하긴 하지만 일상을 그린 소설은 자칫 잘못하면 지루하게 느껴지고 흐름을 끊어 다시 책을 잡기 어려운 경우도 생기지만 이야기는 다소 평범함을 가장하고 있을 뿐 파격적인 이야기들로 줄줄이 엮어집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마치 작은 마을의 한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훈훈함이 있어요.

 

그것은 아마 사람과 사람 간의 온기같은 것을 그렸기 때문이겠지요. 동네 사람들에게 이상한 소문이 돌 수 있어 숙부님과 그 아들로 설정하고 생활하지만 누구보다도 걱정할 것 같았던 토바짱은 그 얘기를 재밌다는듯 먼저 사람들에게 살짝 얘기해준 에피소드는 정말 재밌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 인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일화가 아닐까 싶어요.

 

나이를 뛰어넘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굳이 표현하자면 친구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어떤 수식어로도 단정짓지 않는 그들의 관계가 마치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까 생각됩니다.

 

학원물의 이야기가 뻔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다양한 인물들이 모여 어디로도 갈 수 없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부딪혀야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대로 어디로도 갈 수 있지만 함께 살아가는 이런 기묘한 관계도 다른 매력이 있지요. 짐작은 가지만 정확한 토니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결말도 재밌구요. 마지막 코스케의 직업 선택도 살짝의 반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출간한지 좀 된 소설이지만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읽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었는데 역시 수프와도 같은 따스하고 허기를 채워주는 것 같은 소설이 아닐까 싶네요.

 

 

 

 

 

책 정보

 

Soup Opera by Agawa Sawako (2005)
수프 오페라
지은이 아가와 사와코
펴낸곳 랜덤하우스코리아(주)
초판 1쇄 발행 2007년 4월 16일
옮긴이 맹보용
디자인 박현정

 

 

오타 p. 10 나와는 스물네 살 차이로 친부녀 사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 차지만 마음만은 거의 자매 또는 친구다. -> 친모녀

 

p. 147

어느덧, 바람이 강해졌다. 한낮에는 후끈후끈했는데 저녁이 되니 꽤 쌀쌀해졌다. 길가의 모퉁이에 쌓인 낙엽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고, 그 소리들이 겹쳐지며 하나의 음색이 되어 길을 따라 흘러간다. 고개를 들어 보니 가로수인 커다란 은행나무 잎들이 석양에 반사되어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러움. 이 숭고하고 위엄 있는 짤막한 순간, 빛을 뽐내기 위해 은행이라는 나무는 부지런히 나무 줄기들을 살찌우고 잎사귀에 생명을 불어넣어 흔들리지도, 술렁이지도 않고 느긋하게 때를 기다렸던 것일까.

 

p. 400

소설가가 얘기했어요.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라 함은 거기에 연애감정이라든가 특별한 감정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경우라도, 혹은 알고 지낸 시간의 길고 짧음도, 만남에는 상관없이 인생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 되기도 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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