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이 없어질 때 읽는 글 ③
프랭클린 D.루즈벨트는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렸다. 하지만 그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네 차례나 미국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는 말했다.. "세상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한 가지는 바로 두려움 그 자신이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여배우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사라 베른하르트는 70세에 불의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후 8년동안 그녀는 배우 생활을 계속했다.
1백 편이 넘는 서부 소설을 써서 2백만 부 이상이 팔린 성공적인 작가 루이스 라모르는 첫 원고의 출판을 요청했다가 출판사들로부터 무려 350번의 거절을 당했다. 훗날 그는 역사에 기초한 작품으로 국가에 기여한 동로가 인정돼 의회로부터 미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특별 메달을 받았다.
1953년에 줄리아 차일드와 두 명의 동료는 <미국 가정을 위한 프랑스 요리법>이라는 책을 쓰기로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줄리아와 두명의 동료는 5년 동안 그 원고에 매달렸다. 그런데 출판사는 850쪽에 달하는 그 원고를 거절했다. 줄리아와 두 명의 동료는 원고를 재수정하는 데 다시 한해를 바쳤다. 또다시 출판사는 원고를 거부했다. 하지만 줄리아 차일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재작업을 하는 한편, 1961년에 새로운 출판사를 만났다. 원고 쓰기를 시작한 지 8년 만의 일이었다. 그들은 <프랑스 요리 예술의 대가가 되는 법>이란 제목의 책을 출판했고, 이 책은 1백만부가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1966년에 <타임>지는 줄리아 차일드를 커버 스토리에 실었다. 줄리아 차일드는 30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그 분야의 정상을 달리고 있다.
전세계인에게 사랑받던 <슈퍼맨>의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는 낙마 사고로 전신마비의 장애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1년 뒤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휠체어에 온 몸과 머리를 묶은 채 기관지 튜브를 통해 호흡을 하면서 그는 튜욕 북부 웨체스터 카운티 촬영장에서 배우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직접 몸으로 시범을 보일 수 없어 일일이 말로 설명해야 할 때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했다. "몸짓을 하지 못하니까 오히려 생각이 집중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가 분명해지기 때문에 말이 예전보다 효과적으로 나오게 되었다."
더그라스 맥아더 장군은 불굴의 의지가 없었다면 결코 권력과 명성을 얻지 못해을 것이다. 그는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에 응시했다가 두번이나 낙방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세번째 응시해 합격을 했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책 속으로 행진해 나아갔다.
웨인 그레츠키는 17세에 이미 뛰어난 운동선수였다. 그는 하키와 축구 중에서 한가지 운동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는 하키쪽을 택했다. 그가 프로 하키 팀을 찾아갔을 때 감독이 말했다. "자넨 체중이 80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아. 너무 가볍지. 하키선수들의 평균 체중은 100킬로그램이 넘어야 하네. 자넨 여기서 살아 남을 수 없어." 그러난 그레스키는 말했다. "난 하키 퍽(하키에서 공처럼 사용하는 작은 원반)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어요." 오늘날 웨인 그레츠키는 수백만 달러의 계약금에 백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는 세계최고의 하키 선수가 되었으며 ,일곱 차례나 MVP에 뽑혔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블랙호크 전쟁 때 장교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그는 사병으로 강등되어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대니 드 비토는 키가 150센티미터에도 미치지 못했다. 아부도 그가 훗날 텔레비젼 스타, 영화배우, 감독으로 대성공을 거두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두려움이 자신을 이기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그 자신이 두려움을 이겨냈다.
1952년에 에드먼드 힐러리는 세계 최고봉인 8천 7백 미터 높이의 에베레스트 정복에 도전했다. 도전에 실패하고 나서 얼마뒤 그는 영국의 어떤 모임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다. 연단 앞으로 걸어나온 힐러리는 주먹을 들어 벽에 걸린 에베레스트 사진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에베레스트여, 처음엔 네가 날 이겼다. 하지만 다음 번에는 내가 널 이기겠다. 왜냐하면 넌 이미 성장을 멈췄지만 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한해 뒤인 5월 29일에 힐러리는 에베레스트 최초 등반자로 역사 속에 기록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