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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길 함부로 걷지 마라 - 산운집
이양연 지음, 박동욱 옮김 / 소명출판 / 2021년 4월
평점 :
저자 산운(山雲) 이양연(李亮淵, 1771~1856)은 조선 후기 사람입니다.
평생 변변찮은 벼슬에도 오르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지요.
하지만 그가 남겨둔 시의 세계는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한 담백함과
우수한 시적 정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시나 고시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시가 가진 옛 풍류나 정취를 좋아하는 1인입니다.
그만큼 아는 바가 없지만
5언 절구와 5언 고시를 읽을 때는 저절로 감탄이 나왔습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람 대 사람으로 전해지는 감각과 공감은
언제나 설레고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소박하면서도 그 시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시 중에는 재밌는 것도 많았어요.
ㅡ금강산 유람 후 시를 짓지 못하다가
26년 후에 꿈에서 얻어와 완성을 했다던가,
ㅡ원님인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보지 못하고
돌 벽에 시로써 남겨두기도 하고
ㅡ유일하게 자신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준
지인과의 교분을 회고하면서도 꿈같은 인생을 말하기도 합니다.
남자들이 여인의 어여쁜 용모만을 사랑하여,
모든 문제의 근원이 남자라며 비판하는 시도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시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주체적이며
순종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이 삶을 주장하기도 하고
남편에게 종속되는 삶을 거부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운'은 가난으로 인해, 유람을 하면서도 고생이 심했나 봅니다.
간혹 그의 시에서 부유한 벗을 떠올리기도 하는데요,
함께 떠나지도 못하고 집에서 일만 했을 부인은
또 얼마나 맘고생을 했을지.... 이런 생각도 들더라구요ㅋㅋ


시만 보면 그 속에 숨은 뜻을 오해하거나 못 볼 수 있습니다.
위에 있는 시도 부인의 원망과 비난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설을 보면
아내의 입을 빌려 자신의 무능력함에 대하여
객관화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농부의 살가죽은 검게 그을고
농부의 마누라는 맨발이로다.
늙어 추함 둘이 다 까맣게 잊고
밀수제비 한 웅큼을 함께 먹누나.
- 시골의 늙은 마누라 _298p
조선 시대의 척박한 백성의 모습도,
절경을 노래한 감흥에 빠졌던 시간도,
충정과 절개를 드높인 감격스러움도
전부 소개하고 싶은데 아쉬워요.ㅎ
'산운'의 한시를 빠짐없이 수집하여 번역한 책.
작품마다 평설이 있어서 숨은 의미와 역사 이야기까지
깊이 있게 음미하며 즐길 수 있었습니다.
곳곳에 실려있는 그림과 사진도 좋았습니다:)
옛날 사람은 나를 만날 수 없고
후세 사람도 나를 만날 수 없네.
그대와 함께 같은 세상 살아도
어찌하여 바다처럼 아득하던고
- 강재에게 수답하다 中 _144p

#도서협찬으로 읽었으나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