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르마 폴리스 - 홍준성 장편소설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평점 :
고전과 현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느낌의 새로운 소설입니다.
시종일관 기묘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취저였어요. #잔혹동화같은
벌레를 먹고 안락한 보금자리를 꿈꾸던 박쥐와 고서점의 꼽추 주인의 행보가
단편 영화를 보듯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이곳은 가상의 도시 '비뫼시'의 남쪽 게로브란타 거리.
단순함을 추구하는 간결주의가 성행하면서 아무도 찾이 않은 고서점은
재정난으로 인해 '임대 문의'를 내걸지만 결국 강제 압류 당하고 맙니다.
"신께서는 내 기도를 듣고 있기나 한 걸까?"
"당연히 듣고 계시지." 친구가 대답했다.
"그럼?"
"문자 그대로 듣고만 계신 거지." 그가 소년처럼 이죽거리며
붙였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걸 하고 계신달까?" _13p
거친 인부들의 발소리에 놀란 박쥐는 고서점을 벗어나 도시로 향하지만
야행성으로 방향감각을 잃습니다. 그 순간 송골매의 발톱에 채이고
송골매는 자신의 둥지로 향하던 중 숨어있던 고양이에게 잡히고 맙니다.
인간과 동물 모두 이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잡히고 먹히는 과정을 통해 신과 정의, 신념의 존재를 묻는 것 같았어요.
이야기는 끊임없이 흘러가고, 흩어졌던 것들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다시 끼워 맞춰지기 마련이다. _103p
'가시 여왕'의 등장으로 한층 더 공포물이 되어갑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끔찍한 학대를 당하며 자라났습니다. (상상초월;;)
권력을 탐하던 음흉한 자의 죽음으로 권력의 정점에 선 가시여왕은
재혼을 통해 꼭두각시 남편을 두고 임신과 출산을 하는데, 아이의 외모가...
필연과 우연은 이야기의 핵심처럼 등장합니다.
대홍수로 대량 발생했던 고아들 중에
42번 고아였던 사내아이는 기가 막힌 인연으로 살아남습니다.
(출생에 얽힌 기괴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문제는, 아이를 살린 남자가 매우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혹시 기회가 괜찮다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고아원에서
새로운 사역(事役)의 열매를 맺게 하고 싶습니다만...." _108p
'사역의 열매'라는 단어만으로도 가학적인 인물이라는 촉이 옴ㅋㅋ
'P수사'로 불리는 이 남자는 불쌍한 아이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낙원을 완성하고, 잔혹하고 교활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물론, 그전까진 다정하고 착한 가면을 쓰고 있었죠.
P수사는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보다는 애원하며 비는 것을 더 선호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릴 때마다 그 입들을 찢어버리는 상상을 했고,
목욕을 시켜줄 때마다 만나는 하얀 엉덩이에 혁대로 매질을 가하고 싶어 했다.
그 충동을 억누르느라 때때로 잇몸에 피가 나도록
어금니를 꽉 물고 있어야 했을 정도였다. _114p
42번의 아이와 기형의 외모를 가진 왕자, 무소불위의 가시 여왕
그리고 박쥐와 움직이는 가고일 석상, 박제가 되어버린 송골매,
어떻게든 자신의 낙원을 다시 세우려는 P수사의 결말이 궁금해서
순식간에 읽어버렸습니다. 가독성 장난없네요:)
은행나무에서 출판된 책 중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소설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믿고 읽었는데, 성공했습니다!
결말은 마녀의 거울을 들여다보았던 느낌으로 끝났지만 재밌었어요.
표지 뒷면 문구에 나온 '독자의 지적 한계를 시험하는'
데카르트, 벤야민, 셰익스피어, 까뮈, 베케트... 매력적인 상징들은
바로바로 찾아내진 못했지만 그로테스크한 고전 작품에서 느껴봤던
호러와 광기는 확실하게 맛봤습니다. 굳굳~




#도서협찬으로 읽었으나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