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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평점 :
위급한 폐암 환자의 수술이지만 다급함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담당 외과 의사의 '35시간 근무'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가슴은 열려있지만 그는 손목시계를 보며 장갑을 벗어버립니다.
함께 수술을 진행하던 여성 외과 의사도 남자를 따라 마스크를 벗습니다.
'하필 휴가철 절정'에 수술을 받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뱉으면서.
그래서 환자 '아나톨 피숑'씨는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냉동고로 들어갈 위기에 처합니다.
의사들은 휴가가 끝난 후에 소생술을 시도해보자는 농담을 건네고
피숑은 원치 않는 사후세계로 들어섭니다.
한 인간의 생이 마감된 후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가브리엘: 영혼 번호 103-683. 당신은 아나톨 피숑이기 전에
무수한 삶을 거쳤어요. 순서대로 보자면 고대 이집트 궁궐의 여인,
카르타고 항구에서 생선 내장을 빼던 사람,
앵글로색슨족 전사, 일본 사무라이를 거쳐,
1861년, 그러니까 당신의 전전 생에는...
그는 자신의 수호천사 겸 변호사와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영화를 상영하든 대형 스크린이 있는 그곳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인간계의 상식도 통하지(?) 않죠.
여자친구의 임신으로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자신의 꿈도 접고 열심히 삶의 전선에 뛰어든 피숑이지만
심판을 받기 위해 선 자리에서는 다르게 해석됩니다.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여인을 선택하지 않은 점.
전생의 자신이 바라던 대로의 직업을 선택하지 않은 점.
바람을 피워서라도 권태기를 극복했어야 하는 노력을 하지 않은 점 등등..ㅋ
카롤린: 이의 있습니다. 검사는 혼외정사를 옹호하고 있어요!
베르트랑: 이미 얘기했지만, 천국의 가치관은 지상의 그것과 같지 않아요.
사실 결혼은 남자가 자신의 핏줄을 인정하게 만들어
사생아와 고아의 수를 줄이려고 만들어진 제도예요.
가브리엘: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경험주의적 문제 해결 방식이죠.
아니 이 웃지못할 재판의 기준은 무엇인지ㅋㅋ
천국의 가치관은 알수록 가관입니다.
판사인 가브리엘의 과거도 재밌습니다.
그로 인해 결말이 전혀 엉뚱(?) 하게 흘러가기도 하니까요.
변호사와 검사의 과거도요.ㅎ
상식을 깨는 천국의 가치관이 어이없이 느껴지기도 하고
사람의 영혼이라던가 과거의 선과 악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이 되는 과정도 신선했어요. 상식파괴?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듯, 현대적인 방식이라는 것도요 ㅎㅎ
사후세계의 이야기를 소재로 잡았고 심판이라는 제목에서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하고 있던 내용이 나오기도 했으나
피숑의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넘기는 노력을 읽다 보니
현재의 내 삶의 진취적인 방향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소설이 아닌 희곡이라는 점에서, 과연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만큼 재미를 줄까라는 점이 의문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부담 없는 분량만큼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