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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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택배기사로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성깔(?)을 자랑합니다.

누구든 그를 만만하게 봤다가는 보기 좋게 당하죠.

칼 같은 도구나 납치, 감금, 고문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로는 절대 안 집니다.

잔인한 범죄 따위 나오지 않아요 




"어이, 택배.'


고급 양복에 금테 안경을 낀 깡마른 남자는 노예를 부릴 때 쓰는 말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이 다 있기 때문에

되도록 진상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걸 알게 된다.

시비가 붙어봐야 더 더러워진 기분 말고는 건질 게 없기 때문이다.


( ... )


"회사에서 당신 직위가 부장인 건 알겠는데 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당신 직위는 뭐요? 부장? 이사? 사장?

모르는가 본데 내가 알려줄까? 

여기서 너의 직위는 남이야. 남이란 직위가 어떤 건지 몰라?

네 일이 아니면 신경 끄는 직위야. 어디서 네가 다니던 회사에서 하던 짓을 

회사 밖에서 하고 지랄이야? 너 뭔데? 내 월급 주는 사장이야?

그리고 초면에 왜 반말인데?


젠장, 이따위 인간들 안 보려고 택배를 하는데 잊을만하면 

한 놈씩 꼭 나타난다니까."


                - 오늘도 파도는 높이 일렁인다 _88



택배업이 서비스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네 사람들은 당연하게 요구하길 멈추지 않습니다.

원하는 곳까지 놔주고 가라는 명령부터 친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건의를 넣겠다는 둥

심지어 자신의 개인사를 털어놓으며 들어달라고 하는 사람까지 정말 다양하게 등장하는데요,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갑과 을'의 관계로 단정 짓는 무례함에 화도 났어요.


하지만 주인공은 어느 분야에서도 막힘없이 논리 정연한 반론을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사이다를 쏘기도 하고, 무심한 척 상대의 말을 들어주기도 하는데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말이 많아서 피곤하기도 하지만요.ㅋ



주인공이 다니는 택배회사에서는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추는 사람도 많다 보니, 기억하기 좋게 별명으로 통하죠.

지역을 붙여 '행운동'이라던지 '바나나 형님' 같이 외모의 특징을 붙이기도 하구요.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는데,

택배 배달 지역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같이 보이지만

살해 욕구를 느끼는 우울증 여성, 일을(?) 본 후엔 손을 씻어야 한다며 따라다니는 바보;;

경제학을 강제로 가르치려는 노인과 아름다운 손녀의 이유 없는 친절,

알고 보니 '게이'와 마약 범죄 그리고 조폭의 협박까지;;;




그래도 이 중에 가장 미스터리한 건, 어떠한 위협에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태연스레 협박용 나이프를 빼앗아 장난을(?) 치는 

주인공이 아닐까 싶지만요.


그는 어디서 왔고 정체는 무엇이며, 

사막의 안부를 묻는 '의문의 남자'는 또 누구일까요.


속 시원한 결말이라고 하기엔 궁금증이 많이 남았지만

카메오처럼 등장하는 오마주나 영화, 소설의 인용되는

문구는 또 다른 흥미로움이었습니다. 

마광수 시인의 <효도에>랄까...;; 관점의 충격을 받은;;



제목을 보고 떠올린 '침입자들'과 작가가 그려낸 '침입자들'의

관점 차이가 문득 떠올라 재밌었어요.


(실제로 작가가 택배 일을 하면서 느끼고 경험했을) 생생한 현장감과 

자신의 삶을 흔들림 없이 걷고 있는 당당한 모습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면서 차기작도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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