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 기도
산티아고 감보아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고요한 밤의 기도가 주는 평안함을 생각했는데, 시대적 정치 문제와 비극적인 한 청년의
삶이 안타까워, 먹먹함으로 눈물이 났던 소설입니다. 인도 델리의 영사였던 주인공을 따라
억울한 누명을 쓴 청년의 누나 '후아나'를 찾아가는 길은 길고도 암울합니다. 그녀의 행적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실종이나 살해된 흔적은 전혀 없었어요.
알 수 없는 미궁처럼 그녀의 흔적은 잡히질 않습니다.
누명을 쓴 청년의 이름은 '마누엘'인데 심각한 가정 불화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끝까지 함께 하자고 약속한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이 많이 나와요. 그들의 아버지는
정치적인 추종 세력이 뚜렷했고 가족들에게 독재자와 같은 모습을 보이며 강압적입니다.
어머니는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경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이들에게도
따스한 관심을 주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삶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바로 그런 이유로
어머니도 그를 무시한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집에서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그러니까 명령하고 독재를 자행했습니다. 마치 내가 이 조그만 세계의 왕이다,
여기서는 내가 말하는 대로 한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직장에서의 좌절감을 집에서 보상받거나 아니면 균형을 찾았습니다.
가난한 가족이나 불행한 가족들처럼 말입니다.
그게 바로 불행하게 사는 우리의 방식입니다.
- 제1부 _21
늪과 같은 가난함에서 벗어나고자 마누엘과 후아나는 집으로부터 탈출을 꿈꾸죠.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무참히 죽임을 당하고 사라지던 콜롬비아의 시대적 배경과
태국 방콕에서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억울한 청년이 겪어야 하는 참혹함이 암담합니다.
무심한 가족의 관계 속에서 유일한 위안을 주던 누나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났을 뿐인데
마약 소지라는 어이없는 일을 당하고 교도소에 수감된 마누엘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ㅠ
그런 그의 애절함에 공감하고 최대한 도움을 주려 했던 주인공은, 체포 당시의 수상한 점을
감지하고 변호사를 시켜 사형만은 피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리뷰를 쓰다 보니 이 책이 매우 우울한 이야기로만 비칠지도 모르겠네요;;
후아나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나오는 각국의 도시에 대한 묘사는 여행 소설 같았습니다.
방콕, 뉴델리, 보고타, 도쿄, 테헤란을 거치는데요, 직접 도시를 걸어가며 느껴지는
오감의 표현이나 사람들의 특색, 도시 전체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었어요.
결말을 향해 갈수록 후아나의 행적이 윤곽을 드러내지만 동생 마누엘이 생각하던
과거의 따뜻한 누나의 모습은 기대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마누엘 역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만큼이요. 스포라서 다 말할 수도 없고.... ㅠ
나는 어디에 있죠? 나는 어디에 있을까요?
용기를 내서 나를 찾아봐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세요. 나를 찾으세요.
나를 찾아요. 아마도 당신이 그토록 열망하는 광고판의 여인일 수도 있고,
때때로 밤이 되면 당신이 찾아가는 여자일 수도 있어요. 나의 맨 다리는
마티니 장에서 나와 동요하지요. 나는 당신의 기도를 듣고서 소중하게 여기는
유일한 여자예요. 나는 당신의 상상 속에서 살기 때문이에요.
- 제2부 _286
사형을 당하지 않기 위해, 거짓 자백을 차마 할 수 없었던 청년 마누엘은
기다림과 그리움에 지쳐 안타까운 선택을 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절규하던 주인공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네요.
마지막에 나오는 누나의 조용한 고백은 많은 것을 담고 있는데, 다소 충격적이었어요 ㅠ
부정부패의 시대를 담은 사회파 소설보다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로 남을 작품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