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이라는 책
알렉산다르 헤몬 지음, 이동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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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로서 겪은 차별과 인종 간의 고통을 에세이로 그려낸 작품이다.

연대로 나눠져 단편 모음집 같다.


저자 '헤몬'은 미국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보스니아 출신이다. 그가 겪은 다양한 불공평한

일들이 나오는데, 가장 안타까웠던 이야기는 어릴 적 그가 인종차별 단어를 무심코 내뱉으면서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지내왔다는 점이다. 친구를 지칭해 던진 말은 '터키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금기시된 것 있기에 아이들은 모두 경직되었고, 상대 친구는 울어버린 것이다.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인종차별이 주는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점을 떠올리며 씁쓸했다.



실향한 사람은 그리움 가득한 지난날을 환상함으로써 - 이게 내 이야기입니다!-

서사적 안정을 추구한다. 우리 부모님이 끝없이 호의적으로 자신들과 캐나다인을

비교했던 건 그들 스스로 열등감과 존재론적 불안을 느꼈던 탓이다.


                                           - 타인들의 삶 _27


고국의 내전으로 인해 입국 거부를 당한 헤몬은 난민이 된다.

생계를 위해 그리피스 운동이라던지 서점 판매원, 강사 등 여러 가지 일을 해보지만

'이민자'라는 낙인이 강하게 작용하는 현실은 실의에 빠지게 한다.

문학을 전공하며 얻어낸 문화 잡지 편집장이라는 능력은 그렇게 빛을 잃어 갔다.



나는 내 새로운 인생의 개같음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세 든 집을 개집이라 불렀고

개같은 내 처지를 묘사한 복잡하고 황홀한 독백을 친구들 앞에서 선보였다. 친구들은

왜 이사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답하지 못했고, 지금도 못 하겠다. 아마 재앙에서

희열을 찾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개같은 날, 개같은 인생, 개같아졌다.


                                              - 개집에서의 삶 _207



그래도 영어 실력이 조금씩 늘게 되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 유명한 곳에 발표한

산문이 호응을 얻게 되면서 시카고에서의 삶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방인'으로 남는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희망을 향하는 모습에 울컥하기도 하고,

부부가 아이를 잃은 슬픔을 토해내는 부분에서는 먹먹해지기도 했다.



종교가 저지르는 가장 야비한 오류는 바로 고통을 무슨 깨달음이나 구원에 이르는

한 단계쯤으로 숭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이사벨의 존재로밖에 채울 수 없는 공허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 수족관 _242


얼굴도 모르는 머나먼 곳에 있는 누군가의 독백을 만난 기분이다.

그러다가 슬픔이 가득 찬 심장의 외침을 듣는 기분도 들었다.

파란만장했던 한 남자의 운명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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