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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김인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여유있는 삶은 어떤 삶일까 생각해 봅니다.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걸 맘대로 할 수 있다면 여유로운 것일까요. 놀고먹고 자고!
최근에는 마음의 여유를 줄 수 있는 책을 고르는 편인데요, 이번 주에 읽은 이 책은
느리고 느린, 느림의 미학을 제목부터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라니;; 기어가다가 죽는 거 아냐?막 이러고 ㅋ
서울살이 사십 년 끝에 가난에 떠밀려 살게 된 산자락 마을.
시골과 자연을 함께한 저자의 인생과 삶이 조각조각 들어있는 유고 산문집입니다.
그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낀 지인들이 생전의 글을 모아 냈다고 해요.
(출간을 위한 글이 아니었기에) 솔직한 내면이 그대로 드러난 문장에서 소박함을 만났어요.
맨 처음에 호러물같이 귀신 이야기가 나와서 공포 에세인가 싶기도 했답니다.
노란 파카는 십 년 전 늦가을 저수지 북쪽 수변에서 발견된 여인이다. 발견 당시 백골에
노란 파카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추정 나이는 사십 대 중후반, 사인은 두개골 함몰,
타지에서 변을 당해 저수지에 유기됐다는 수사 결과를 나중에 형사의 지인한테서 들었다.
노란 파카는 주로 하현과 그믐 사이에 시신이 발견된 수변 부근에 언제나 노란 파카 차림으로
출몰하는데, 수면 위로 짧은 파마머리를 내놓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거나 미친 듯이 헤엄을 치며
저수지를 오락가락한다. 장거리 수영선수처럼 자유형과 접영을 섞어가며.
- 물귀신의 봄 _011
계절별로 자연과 곤충, 조류 등 동식물을 바라보는 사색적인 대화와 부모님의 임종까지...
어찌 보면 저자의 삶의 어느 한 부분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글 같았어요.
한편으로는 수수한 농촌 일기같이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ㅎㅎ 농사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
마냥 신기했어요. 시트콤처럼 재밌는 이야기도 많아서 소소한 웃음도 나와요.
고추에 약이 한참 올랐을 즈음해서 탄저병이 돌았다. 탄저란 놈은 땅에 상주하다가 비가 오면
튀긴 빗물을 타고 올라타 고추를 노랗게 말려 죽이는 고추 에이즈이다. 그렇게 농약을 뿌려대는데도
올 우리 동네 고추밭이 피해를 좀 봤다. 그중에서도 제일 피해가 큰 집이 바로 북어대가리네였다.
- 북어대가리와 고추밭 결투 _107
조용한 시간에 읽다보면, 어느 산속 마을에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가
저자의 구시렁 같은 혼잣말을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들고...
나 같은 질환을 앓는 사람에게는 전원이 도시보다 낫다. 도심에 들어가면 문득문득
무슨 흉가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람은 그 흉가에 기생하는 악귀나 원귀나
잡귀로 보이고, 여자는 다 요물로 보이고, 하기야 제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봐도 그렇다.
그 많은 사람이 모두 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는 건 불합리한 가정이다.
재미없는 상상이기도 하고, 열에 서넛은 헛것이 인간의 탈을 쓰고 나다닌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어떤 신선 _233
저자의 감수성이 가득한 세상을 만나는 동안, 마음이 초록 초록해짐을 느꼈습니다.
최근 쌓인 일로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시골 가서 쉬고 온 듯해요.
이것이 바로 북캉스인가요?ㅎㅎ 망고 빙수와 함께 힐링 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