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암평전
간호윤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6월
평점 :
이 책을 읽고 느낀 장점을 세 가지로 말하고 싶다.
1. 과즙미(?) 터지는 옛 단어가 즐겁다.
연암을 매우 미워하던 '유한준'의 글로 시작되는 구성은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결연함마저 느껴지는 전투적인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선비가 싫어하는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평전을 처음 본 탓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단어들이 나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중간중간 빵빵 터지기도 했다.ㅎㅎ
*엉너리치는: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벌쩡하게 서두르는
*개질량: 털이 붙어 있는 채로 무두질하여 다른 개의 가죽으로 천인들의 방석 같이 쓰임
*똥감태기: 온몸에 흠뻑 뒤집어쓴 똥. 또는 그것을 뒤집어쓴 모습
*억구럭스런: 교묘한 말로 떠벌리며 농락하는 듯한
- 유한준, 연암은 문둥이다 _37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도 욕은 존재했으리라.
지금 보기엔 매우 순화적으로 보이지만 이때 당시만 해도 치욕+굴욕적인 말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웃으며 볼 일은 아니지만, 후세로 태어난 덕에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2. 평전을 작성한 사람들의 진솔한 감정과 이면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유한준, 정도, 박규수, 오복, 이씨 부인, 박종채, 이재성, 백동수, 유언호, 연암, 간호윤
총 11명이 등장하는데 이 중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정조의 글이었다. 그의 외로운 정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연암을 두고 이토록 복잡한 심정으로 고뇌했을 줄이야... 위기도 등장한다!
"황공하옵니다. 황공하옵니다!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다느냐. 이제 그만하라.
속맘 없이 혀로만 뱉는 그런 말 이제 듣기도 싫다. 연암체가 글로써 세상을
희롱했다는, '이문위희' 넉 자로 자기의 죄를 넘어가려 하는 것도 아니 될 말이다."
- 정조, 폐하! 문자전쟁이 일어났습니다 _65
3. 평전을 옮김에 타인의 감정으로 인한 오염이 없다.
없다고 꼭 단정할 수 있는 없지만ㅠ 나는 이 부분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
문장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풀어낸, 간호윤 저자분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내가 모르는 책 이름 등 몇몇을 제외하면 매끄럽게 읽힌다. 가독성이 그만큼 높다.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평전을 이렇게 재밌고 쉽게 볼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연암 스스로가 자신을 향해 '조선의 삼류 선비'를 자처한 글도 인상적이었다.
여타 저자의 생각이 많이 들어간 것과는 달리, 작성자의 글 그대로가 실린 건 강점이다.
주석 또한 따로 뒤나 아래를 찾을 것 없이 바로 옆에 달려있어서 보기 편했다.
소개하고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 많은 책이다.
연암 박지원에 대해 일방통행의 글만 봐왔다면 적극 추천한다.
본인 또한 사흘을 굶으면서도 다리 다친 까치에게 밥알을 주지 못하는 연민과 안타까움 등
다양한 일화와 진심어린 성정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