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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창비에서 제발트 작가 탄생 75주년을 맞아 <토성의 고리>와 <이민자들> 개정판이 나왔는데,
대표작 <이민자들>을 선택하기까지 갈등 좀 했다능ㅎㅎ 물론 둘 다 읽으면 좋겠지만 ㅠ
제발트는 노벨문학상까지도 거론될 정도로 유럽 현대문학에서 손꼽히는 작가라고 한다.
단 4개의 작품만을 남기고 57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안타깝다.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지만, 초반에는 집중이 잘 안되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최근 읽었던 소설들과 표현방식이 전혀 달라서였다. 그동안 쉽고 간략한 문장에 길들여졌나 보다.
블록을 하나씩 쌓아나가듯 꼼꼼한 묘사를 읽다 보니 속도가 나질 않았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집중력이 높아졌다. 천천히 구체적으로 이미지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산과 도시, 동네, 그리고 사람들이 섬세하게 살아났다.
영화처럼 서서히 영상을 보는듯한 기분으로 나만의 도시를, 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중간중간 들어있는 흑백 사진으로 사실감이 더해서 좋았다.

이 책은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나'라는 주인공이 그들을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하나로 이어진다. 묘한 매력이다. 그 시대, 그 시절, 그 사람을 찾는 과정이 리얼하다.
헨리 쎌윈 박사 - 기억은 최후의 것마저 파괴하지 않는가
파울 베라이터 - 어떤 눈으로도 헤칠 수 없는 안개 무리가 있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 내 밀밭은 눈물의 수확이었을 뿐
막스 페르버 - 날이 어둑해지면 그들이 와서 삶을 찾는다
암브로스를 제외한 3명은 유대인이다. 그들의 죽음은 고향에서 버림받은 상실감이 짙다.
마지막 가는 길도 고통으로 가득 찬 모습이다. 어느날 갑자기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다정했던
이웃들이 차가운 눈길로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장면은 지독하게 가혹하다.... ㅠ
쓸쓸히 자살로 삶을 마감해야만 했던 이야기를 읽을 때는 가슴이 먹먹했다.
이번 개정판은 기존에 실려있던 사진들 보다 더욱 크고 선명하게 개선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장은 멀리서 봐야 겨우 형상이 구분 갈 정도로 흐릿했다.
개정판이 나오면 또다시 구매해서 보는 이유인가 보다.

읽다 보니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진짜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실존 인물을 자신의 경험을 쓴 책 같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경험인 줄 ㅋㅋ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는 제발트가 실제로 작품 속 인물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들이 사는 곳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는데 실제와 허구를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소설 속 화자들이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점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기하게 읽었던 내용은 막스 페르버_ P194
'티스메이드 (teas-maid)라는 차 만드는 기계가 나오는 장면이다.
알람 시계도 달려있고 수증기를 내뿜으면서 차를 만든다고 한다.
호텔의 여주인이 '기적적인 가전제품'이라고 설명하는데 공감했다 ㅋㅋ
그리고 어디에서도 따옴표로 된 "........" 대화체가 안 나온다.
그냥 문장 안에 대화체가 들어있다. 흥미로웠다.
리뷰를 쓰면서 최소한 한 번 더 읽고 써야 하지 않을까.. 망설였다.
한가득 품에 안고 나왔는데도 더 많은 것을 두고 온 것만 같다.
재독이 기대되는 책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