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서정시
리훙웨이 지음, 한수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중국어권 10대 소설 선정, 2017년 10대 소설 1위에 오르며 찬사를 받았다고 해서

큰 기대감을 안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인문학 SF 소설은 처음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중국의 소설 문화가 어색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초반엔 낯선 단어들과 스토리 자체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뭔지는 알긴 알겠는데 조금 어렵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읽는 속도도 더디게 흘러갔습니다만, 집중력은 오히려 올라갔어요.

노벨문학상 수상을 앞두고 자살한 시인 '위원왕후'의 죽음을 파헤치는

주인공 '리푸레이'가 작은 단서들을 하나씩 모으기 때문이에요.


시인 위원왕후의 수상작 <타타르 기사>라는 작품에는

그의 죽음과 관련된 무언가가!!


타타르 기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름이 그런 건 아니고, 다들 그를 그렇게 불렀어요.

타타르 기사는 지금으로부터 수 십 년에서 100년 전쯤 태어났어요.

그는 좋아하는 소녀와 함께 자라며 양치기, 말타기, 별 보기, 책 읽기 등

모든 걸 둘이 함께 했어요. (중략)


둘은 강가에서 이별을 합니다.

소녀는 강 이쪽에서 손을 흔들고 타타르 기사는 말과 함께 강을 건너요.

강 건너편에 도착한 기사는 뒤를 돌아 보지만 소녀가 보이질 않아요. (중략)


그건 시간의 강이었어요. (중략)


모든 게 랜덤이었는데 기사는 마침내 자기가 떠나왔던 시대와

가장 가까운 시기와 맞닥뜨렸어요. 30년 차이였죠.


                             - 12. 渡 도 : 건너다, 물을 건너다 본문 중-


 

'제국'이라는 거대 IT 기업에서 인류의 영생과 통합을 목표로 3가지를 내세웁니다.

바로 의식공동체, 의식결정체, 이동영혼이에요. 이것을 이용하면, 누구나 손쉽게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본 의식 정보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거나 전송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단점도 많아요.

이 책의 맨 뒤, 부록에 실린 '정보의 노예'에서 그 단점의 일부를 만나 볼 수 있었어요.ㅎ


'제국'을 다스리는 리더는 '왕'이라고 불리는 남자인데 그의 영향력은 실로 엄청납니다.

그런데 리푸레이가 하나하나 퍼즐 맞추듯 단서들을 모으다 보니,

 '왕'과 '위원왕후'의 친밀했던 과거가 나오더라구요!


그리고 죽음이 없는 영생을 꿈꾸며 시작된 거대한 계략.

편리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의심 없이 12살 때부터 의식 공동체 단말기를 이식하는 사람들.

사람들에게서 서서히 언어의 힘을 빼고 단순화를 위해 서정성을 말살 시키기 위한 파괴.

 


이 순간에도 쉼 없이 불태우느라 여념이 없는 약 100개의 화장 화로가

그의 수용 한계를 완벽히 깨버렸다.


"책이 아니라 글자가 있는 모든 종이를 태우는 거예요.

최종 목적은 종이를 완벽히 없애는 거고요.

그래서 아까 종이로 된 건 가져오지 말라고 한 겁니다.

가지고 들어오면 나갈 때도 자동으로 검측되거든요.

상심하지 마세요.

저 책, 종이들은 모두 소유자가 자발적으로 팔거나 넘긴 거니까요.

디지털 독서가 가능하고 의식공동체가 있어서 찾고 싶은건 모두

금방 찾을 수 있는 마당에 공간만 차지하는 종이는 남겨봤자 뭐 합니까?" 

                                        

                       -34. 紙 지 : 쓰다, 그리다, 인쇄하다, 섬유 본문 중-

 

중반부터 난해함은 사라지고 서서히 드러나는 비밀에 접근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속도가 붙어서 끝까지 재밌게 읽었습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2050년 미래이므로, 모든 생활 수준이 현재보다 많이 앞서서 표현되는데

신기한 것도 있고, 의외로 지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던 점이 흥미로웠네요.

나중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핸드폰도 경매에 올라갈 만큼 희귀한 때가 올지도 몰라요!

(부록 '경매 0' 에 나와요ㅋ)


 

총 45장으로 구성된 소설에서 각 장의 소제목엔 한자가 쓰여 있는데

한자의 풀이가 중국어와 한국어의 차이에서 오는 차이가 느껴져 아쉬웠습니다.

소설이 가진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는 하나의 재미를 놓친 기분이에요..


중국 작가 소설은 두 번째로 만나보는데요

처음 읽었던 <동트기 힘든 긴 밤>과 <왕과 서정시> 모두 중국의 언론통제를

떠올리게 하네요. 1인 미디어까지 규제하면서 당국의 통제력을 과시하는

현 중국의 모습도 반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 글자를 사용하길 멈추는 것은

본질적으로 세상의 한 부분을 일깨우는 방식을 멈추는 것'

                                      

                                           - 저자 리훙웨이- 


사라지는 한자에 대한 작가의 서글픔이 담겼다는 그의 말에

잊히는 순우리말을 바라보는 감정도 다르지 않음을 느꼈어요...


 

뻔하지 않은 신선한 소재가 맘에 들었어요!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ㅎㅎ

새로운 느낌의 소설을 찾거나 인문학 SF가 궁금하신 분에게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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