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사용안내서 - 건강한 영성은 건강한 몸에 깃든다
게리 토마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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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게리 토마스

 

 

건강한 영성은 건강한 몸에 깃든다.

 

종교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힘을 쏟다보면 스스로의 몸은 뒷전일때가 많이 있다.

일부러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고 그를 찾는 이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몸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일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몸이 상하게 되고 그것을 돌이키고자 했을때는 이미 늦을 때가 많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의 행동이 옳았다고 해야 할까, 잘못되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다름사람을 위하는 종교적인 일을 위해 애쓴 사람에게 잘못되었다고 말할수는 없겠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경우가 일어나지 않도록 종용하고 있다.

 

사탄은 당신의 심령을 숨 막히게 하려 할 뿐 아니라 무슨수를 써서라도 당신의 심장을 멎게 하려 할 것이다. 예수님은 마귀가 “살인한 자”라고 하셨다. 사탄은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의 몸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사탄은 왜 당신을 죽이려는 것일까? 당신이 죽으면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당신의 사랑도 순식간에 끝나고,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신 목적도 깨끗이 무산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가족들, 이웃들, 친구들 등 당신의 영향권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실 때 주로 쓰시는 인물은 당신이다. 당신을 없애면 사탄은 바로 그 인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p55)   -에드 영-

 

에드 영 박사의 말을 발려 저자는 육적인 싸움이 실제로 그 뿌리는 영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건강한 몸을 유지 해야 하나님의 일을 잘 수행할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린 사실 평소의 건강문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학고 있지 않고 있다. 하물며 그것을 죄악이라고는 더욱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그 생각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목받았으나 지금은 대체로 무시되고 있는 두가지 불순물이 있다. 하나는 모든 형태의 과식이고, 또 하나는 몸관리에 대한 게으름이다. 고대에는 이 두 장애물을 식탐과 나태라 불렀다. (p24)

 

우리는 과식하고 게으른것이 그냥 잘못된 생활습관으로만 여기고 있지만, 이것이 계속 될 경우 우리 몸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되고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광된 몸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을 갖게된다.

 

마음을 담고 있는 물리적 집이 망가지면 평생의 남은 사역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p14)

 

위의 말은 우리가 왜 우리의 몸을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해야 할 소중한 존재이다. 덜컥 병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죽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생활속에서 우리를 조금씩 좀먹고 있는 나쁜 습관들이 우리의 몸을 차츰 못쓰게 만들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과 육, 머리와 가슴을 함께 돌보아야 한다. 어느 한쪽만을 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최근에 여러가지 건강을 위한 책에서도 과식을 경고하고 있듯이 이 책에서도 공복통의 장점을 많이 서술하고 있다.

 

공복통은 나를 건강이라는 목적지로 데려다 주는 하나의 감각일뿐이다. 공복통은 오르막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처럼 달갑지 않지만, 그래도 내 삶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 원하는 목적지에 이르려면 이따금 공복통을 견뎌내야 한다.(p73)

 

끊임없는 운동도 많이 강조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달리기를 선택하고 마라톤까지 하게 된다.

우리는 살다가 가끔 안좋은 상황에 빠져 우울에 빠질수도 있다. 이럴때 가라앉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지만 그럴때일수록 움직이고 운동하라고 가르친다.

사이클 경주 우승자 랜스 암스트롱의 부인 크리스틴 암스트롱은 이혼을 겪으며 심한 우울에 빠진다. 그런 크리스틴에게 친구들은 달리기를 권하고, 그녀는 자신의 몸을 단련하는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갖게 된다. 건강한 육체 속에 건강한 정신과 영성이 함께 할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수 있다.

그녀는 여자들이 이혼의 상처를 극복하도록 돕기위해 Happily Ever After (행복한 여생)이라는 책을 쓰고 이렇게 서술한다.

 

내일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날 것이다. 아이들이 깨기 전에 커피를 끓여 놓고 기도 시간을 가질 것이다. 목숨이 허락된 동안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시끄럽고 어수선한 부엌에서 팬케이크를 만들어 아이들을 끌어 안고 아침을 먹일 것이다. 도시락을 싸고, 머리를 빗기고, 신발을 찾고, 양치질을 시키고, 책가방을 내줄 것이다. 학교에 데려다 줄 때 아마 잠옷 차림으로 운전할 것이다.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축복 기도를 해 주고 하나씩 입을 맞출 것이다. 다 끝나면 나가서 달리기를 할 것이다. 허파와 다리에 불이 나는 느낌을 맛볼 것이고, 호숫가의 나무들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을 바라볼 것이다. 동성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실 것이다. 부모형제에게 전화하여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요컨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에도 나는 날마다 하는 일들을 똑같이 할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살 것이다. 선택해야 한다면 현재 내게 있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p196)

 

아마도 이 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중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별로 공감하지 못한다고 생각할수 있을지도 모른겠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종교인을 넘어서서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영위해나가기 위한 조언이라 생각할수 있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위한 사역이라 표현했지만 우리 모두는 자신이 인생에서 해야할 일, 사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서 건강한 몸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것 아닌가.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힘들때 우선 육체를 건강히 해야함에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우리 주위에서 우울증을 운동으로 극복한 사람을 많이 본다. 그만큼 건강한 육체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나로서는 식탐과 나테도 죄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금 더 먹자, 조금 더 자자 라는 생각과 행동이 쌓여서 안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잘 되지 않았었는데, 자시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다만 내몸사용안내서인데 원론적인 이야기만 들어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나는 더 구체적인 실례라든지, 안내서 즉, 활용방안등이 들어있을줄 알았는데...

원제가 <Ebery Body Matters>이니까 번역된 제목만 보고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쉬워서 이 책에 나와 있는 다이어트 방법 하나만 적어 놓으련다.

 

신체적인 관점에서, 하버드 의대 영양학과 부학장인 조지 블랙번 박사는 ‘10퍼센트 원칙’을 권한다. 살을 빼려면 3-6개울 동안 10퍼센트만 빼고, 다시 6개월 동안 그 수준을 유지한 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그렇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우리 몸이 낮아진 ‘기준점’에 적응할 수 있다. 인체의 여러 복잡한 시스템은 오히려 현재의 체중을 ‘방어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살을 빼려 하면 효과가 없어 낙심에 빠질 수 있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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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인간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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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호모 아카데미쿠스.

공부하는 인간이란 의미이다.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공부를 하는 존재이다.

조상들의 지혜를 전수받기 위해, 새로운 세상의 지혜를 알기위해. 하지만 어떤 때는 왜 이렇게 죽도록 공부하는지 이유를 정확히 댈 수 없을때고 많다.

 

이 책은 KBS에서 지난 2월과 3월, 5회에 걸쳐 방송한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는 스캇, 릴리, 제니, 브라이언 네사람을 진행자로 하여 각 나라의 공부하는 이유와 방법들을 돌아보고, 그 차이점을 비교하며, 왜 우리는 공부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는 내용이다.

 

이는 다른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사회의 공부와 그곳의 문화, 삶의 방식은 서로 긴밀한 영향을 미치면서 학문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고유의 문화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유대인의 공부는 중국의 공부와 달랐고, 중국의 공부는 미국의 공부와 달랐다. 또한 미국의 공부는 인도의 공부와 달랐으며, 인도의 공부는 일본, 한국의 공부와 달랐다. 각 문화권의 공부는 피부색보다 더 달랐다.

 

무엇보다 각 나라의 공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많이 다름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각 나라마다 고유한 문화와 삶의 방식이 있기에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지만, 그 차이가 동서양으로 확연히 구분되어 졌다.

 

중국, 한국, 일본등은 예부터 유교권 문화였기에, 선현들의 지혜를 배워 가족과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서양은 개인의 성취를 중요시 하기에 자신의 발전을 위한 공부가 우선이다.

이런 차이점이 공부 방법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양은 주로 강의듣기, 필기, 암기로 혼자 공부를 하는데 반해 서양에서는 한 주제를 놓고 끊임없이 토론하고 논쟁한다. 우리나라의 정서에서는 선생님에게 무례하게 보일수도 있으나, 오히려 그들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 동양인들은 수업의 내용을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받아들인다. 이런 문화 차이로 유학생들의 고충도 있다고 한다.

 

서양인들은 개인의 성취를 순전히 개인의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공부가 하기 싫거나 자신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는 공부의 목적이 자기자신에게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좌절하고 포기한다. 내가 공부를 게을리 해도 특별히 신경 쓰이거나 걸릴게 없는 것이다.

그에 반해 동양인들은 자신만의 명예나 부를 위해 공부하기 보다는 가족, 공동체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공부하기 때문에 나태해지거나 좌절에 빠졌을 때에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책상앞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p 111)

 

서양인들은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누구는 수학자가 되기위해 태어났고, 누구는 농구선수가 되기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즉, 능력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더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내가 못하는 일은 더 노력한다고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동양인들은 능력은 변한다고 생각한다. 즉, 능력은 곧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일을 잘못하면 그만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그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한다. (p 134)

 

이에 반해 인도는 공부가 그들의 신분과 가난을 벗어날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어 지고 있다. 철저한 계급에 의한 차별이 있는 나라 인도. 나라에서는 교육의 기회를 모두에게 허락하고 있지만 가난한 하층민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다. 인도의 교육방법은 주로 암송과 암기이다. 브라만계급의 베다경전을 반복해서 외우는 방식이 그대로 공부방법으로 이어졌다. 이것도 그들의 문화에 따른 영향이다.

 

그렇다면 가장 교육열이 높고 우수한 민족으로 알려진 유대인들의 공부방법은 무엇일까?

그들의 <토라>경전 공부는 수많은 토론과 질문과 논쟁으로 이루어져 있다.

 

흔히 유대인들은 '100명의 유대인이 있으면 100개의 의견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토라>와 함께 무한한 토론과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탈무드>의 영향으로 그들의 머릿속에 '세상에는 완벽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으며, 각각의 주체적인 의견이 중요하다'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p 233)

이렇게 여러 나라의 공부방법과 그들의 생각들을 비교해 본 결과 어느 교육 방법이 좋다고 단정지을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방법이 옳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요즘, 새로운 지식은 얼마든지 검색으로 알아낼수 있다. 중요한것은 그런 정보들을 어떻게 취합하고,분석하고, 분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새로운 것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지식을 내 머리속에 넣는 작업형태의 공부방법으로는 부족하다. 다른이들의 의견을 듣고, 나의 생각을 말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거나 서로의 좋은점을 선택하거나 하는 형태의 공부방법이 필요하다. 암기 위주가 아닌 질문의 공부말이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이들도 그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세상에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나의 생각, 지식등을 공유하며 힘을 합쳐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것이 미래 사회에서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문학교들과 인재들이 질문을 통한 소통과 협력의 공부에서 미래를 찾는 것이다. 따라서 암기 중심의 동양의 공부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는 없지만, 이제 우리도 세계가 질문을 통한 소통과 협력의 공부에 주목하는 이유를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p 355)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높은곳도 드물다. 그러나 그 많은 아이들이 잠도 못자며 많은 시간을 공부에 쏟는데도 노력 대비 결과물이 너무 적은것 같아 안타깝다. -벌써 노벨상이 나와야 하는 건 아닌가?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우리의 공부방법을 조금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육정책을 하시는 분들, 교육에 관계되신 분들이 꼭 읽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다른나라들도 우리나라처럼 입시전쟁이 치열하다. 다만 우리는 학력과 직업에 의한 인식, 소득격차가 심하고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인지 모두 한곳만을 바라보며 가지 않는 것이 부럽게 느껴졌다.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인간이 왜 공부를 하는가 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의 답이 없다는 점이다.

생물학적으로 기질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는 원인이 나는 궁금했었다.

- 표지에도 왜 죽도록 공부하는가 라고 적혀 있으니까. -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인간이 공부를 어떻게 하나,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조사만 이루어진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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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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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에쿠니 가오리

 

 

우리는 사랑이 영원하리라고 믿으며 아니, 바라며 사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상황과 관계, 현실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작가는 변하지 않는 사랑을 그리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마흔다섯의 중년의 나이를 살아가고 있는 슈코.

그녀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남편 하라,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언제나 활기 찬 엄마 기리코가 있고, 번역가라는 전문적인 직업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엄마와의 푸켓 여행에서 미미라는 열다섯 소녀를 만난다. 어딘지 모르게 흥미를 자아내는, 눈을 뗄 수 없는 그 아이에게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바보 같으니. 왜 그런지 모르겠어?"

엄마는 샴페인을 물처럼 꿀꺽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질투잖아, 그거."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질투? 하지만 아직 어린애인걸, 말도 안돼."

"바로 그거야. 아이와 어른의 중간, 네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둘 다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밖에 가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생명력이 저 아이에게는 있으니까."   (p37)

미미는 아빠와 엄마가 이혼한 상태로 엄마와 살고 있다. 엄마는 남자친구와 잘 될때면 모든일에 활기를 띠고 생활을 하고, 잘 되지 않으면 집안일 이며 요리며, 모든 뒷전이다. 미미는 오히려 엄마가 활기 찰때가 더 좋다. 아빠, 네기와는 새해여행을 같이 한다. 네기시는 어디서나 여자친구를 찾는다. 이번 푸켓 여행에서는 슈코와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하라는 아내 슈코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슈코 외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지만 만나는 여자는 항상 주위에 넘친다. 그런 하라를 슈코는 이해할수 없고 마음 아파 했지만 결국 그를 인정하고, 자신도 그런 자유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

토쿄에 돌아와서도 서로 왕래를 하는 미미와 슈코.

언제나 혼자이며 외로울 수 밖에 없는 미미는 슈코를 통해 하라를 알게 되고, 학생으로도 성인으로도가 아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하라에게 점점 끌리게 된다. 전화 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이야기 나누고 싶고...

내 생각이긴 하지만 그 집 사람들은 모두 눈앞에 있는 인간을 그저 눈앞에 있는 인간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아닌, 그렇다고 슈코씨 같은 성인여자도 아닌, 네기시 미우미로만 나를 본다. 따라서 나는 존재할 수 있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p269)

결국 미미는 하라와 깊은 만남을 갖는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소설이었다.

세상에는 여러종류의 부부가 있다.  별일 아닌 상황에도 흔들리는 관계, 언제나 확고한 믿음의 관계.

슈코와 하라는 너무나도 그 믿음이 확고하기에 그리고 서로를 너무나도 원하기에 다른사람과의 만남에 관대하다. 즉 그 만남이 사랑이 전제된 만남이라기 보다는, 그렇다고 육체적 호기심만에 의한 만남도 아닌, 순간순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만남이다. 좋으니까 만나면 즐거우니까 시간을 같이 나누는...

그러나 정말로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세상사람들은 모두 똑같지 않고 다양하니까 뭐 충분히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미가 하라와 깊은 만남을 갖는 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미의 외로움과 어디에도 기댈대 없는 고독함이 자신을 자신 그대로 보아주는 사람에게 끌리게 하는 원인이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다.^^

내가 너무 고리타분 한걸까?

 

다만, 대단한 사건없이 일상적인 하루하루와 관념적인 생각만으로 소설을 구성하고, 그속에 빨려 들게 하는 능력은 작가의 탁월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한 묘사와 서술, 그 가운데 주인공의 심리 변화가 묻어나고 있다. 바람의 작은 흔들림, 사물이 놓인 위치, 손끝 발끝이 가리키는 미묘한 변화 등을 통해 사건의 진행 방향과 주인공의 생각을 구성해 나가는 문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인지 정말 빠른 시간안에 읽어내려갈수 있었다. 그래서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까?

그녀의 문장력과 흡입력 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이해할수 없다.

에쿠니 가오리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소설속 등장인물이 아무리 격한 사랑에 빠져도, 아무리 행복하더라도, 좋든 싫든 그 관계는 변하게 돼요. 하지만 '변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죠. 그 심리를, 이번에는 비교적 직설적으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나마 이 인터뷰를 읽고 이 소설을 쓴 작가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책 제목인 "잡동사니"는 어디서 나왔을까?

"추억의 물건들이네요."

엄마가 한마디 거들자 사야카씨는 손에 든 잔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잔을 천천히 흔들어 백포도주를 회전시킨다. 그리고 말했다.

"잡동사니들뿐이에요."    (p294)

남편과 사별한 사야카는 지금도 남편을 그리워하며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물건을 지니고 반지를 끼고 있다.

추억의 물건이라고 말하는 미미의 엄마에게 잡동사니라고 말하는 사야카...

잡동사니의 의미가 무엇일까?

잡동사니 같은 것들이 모여 사랑을 지탱해주는 끈이 되는 것일까, 영원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랑의 추억도 결국엔 잡동사니라는 것일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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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 삶.사람.사물을 대하는 김정희의 지혜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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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설흔

 

네가 남기고 간 문장 하나가 좀처럼 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를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문장 말이다. (p5)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시절 아들에게 썼음직한 편지형식을 빌려, 그의 삶, 사람 사물을 대하는 지혜를 그리고 있다. (나는 정말 아들에게 편지를 쓴것을 풀이한 것인줄 알았다.^^)

그의 서신과 그림, 또 그가 쓴 책들, 그리고 전해 내려오는 에피소드를 한데 엮어 하나의 아름다운 소설을 완성하였다.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빌어 그가 세상을 바라보며 쌓은 지혜의 말들이 책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얻게 된 문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 그곳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의 인연, 또 그 인연을 통해 얻어진 그의 넓어진 식견. 이 모든것들을 아들에게 해 주고 싶은 교훈의 편지에 담아내었다.

 

시작은 이렇다.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는 아버지를 뵈러 온 아들.

김정희는 그에게 원하는 책을 가져오라 일러두었지만 아들은 그 책을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제주도에 간다. 천성이 선하고 유약한 아들이 아버지의 부탁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자 못 미더운 나머지 호통을 치고 훈계를 하게 된다. 아들은 끝내 말 한마디 마음껏 뱉지 못하고 그림 한장에 힘겨운 문장을 토해놓고 길을 떠난다.

"나를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아들에게 추사는 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가 아들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는 다섯가지로 귀결된다.

첫째, 혹독한 관리의 차가운 손을 기억하라.

이제 너는 알 것이다. 혹독한 관리가 혹독한 관리만은 아님을. 혹독한 관리는 실은 너의 손이고, 너의 마음임을. 구부러지기 쉬운 현실에서도 언제나 꿋꿋하고 냉정한 너의 손과 마음임을. (p39)

둘째, 사물의 올바른 위치를 기억하라.

토착민들은 수선화 귀한 줄을 몰라서 우마에게 먹이거나 짓밟아 버립니다. 보리밭에 유독 많이 난 까닭에 호미로 파내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파내어도 곧 다시 나는 터에 아예 원수 보듯하고 있답니다. 사물이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이와 같습니다. (p54)

셋째, 아랫목이 그리우면 문부터 찾아서 열어라

옹방강과 완원이 뜨뜻한 아랫목이었다면 박제가는 그 아랫목을 차지하기 위해 내가 열어야 할 조선 땅의 유일한 문이었다. (p100)

넷째, 맹렬과 진심으로 요구하라.

맹렬과 진심으로 요구를 하되, 당당히 하라. 목숨을 걸고 하라. 그래야 너의 진정성이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p166)

다섯째, 너의 <세한도>를 남겨라.

"나를 닮고 싶으냐? 아마 너는 그렇수 없을 것이다."

이제 와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냐고? 나를 닮으려는 너를 위한 문장들을 늘어놓다가 지금에 이른 나는 너에게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 왜 그런 것일까? 답은 늘 그렇듯 간단하다. 너는 너이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너는 너여야지 내가 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너는 너여야만 너의 길을 갈수 있기 때문이다. (p198)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두고 행동하며,

사람이나 사물이나 있어야 할 곳에 있을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적확한 통로를 찾을 것이며, (아랫목과 문을 혼동하면 안되며)

모든 일에 열정과 진심을 담고,

너만의 길을 찾아 나아가라.

그의 삶속에 녹아 내려온 지혜로운 말이 모두 담겨 있는 듯 하다.

처음엔 아들에게 나름 혹독한 교훈을 주려했던 추사의 편지가 "너의 <세한도>를 남겨라."로 마무리 되었음에 나는 상당히 고무되었었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아들에게 바라는 것도 많고, 기대하는 것도 많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지만 결국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너만의 길을 찾으라는 말이 진정한 사랑이 가득한 아버지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추사가 정말로 바라는 아들의 모습이 편지의 끝머리에 가득하다.

나는 네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무거운 이슬, 돋아나는 풀, 깊은 산, 길게 지는 해, 네가 머무는 곳에 향을 남기는 사람, 네가 없더라도 향으로 네 자취를 남기는 사람. (p205)

 

추사의 서신과 책, 주위사람들과의 정황으로 이 모든 것을 그려나간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마 추사가 실제 편지를 썼다면 정말이지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 장르를 '인문실용소설'이라고 분류해 놓았을까?

그 시대상에 맞는 구어체 문장을  읽기 쉽도록 매끄럽게 구사한 것 또한 작가의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추사의 서신들과 책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세상에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장래를 새롭게 열어가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꼭 한 번 읽어보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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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지은이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20년째 침대에서만 생활한 한 사람이 있다. 왜 그러는지 언제까지 그럴것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20년을 침대에서 보냈다. 이제는 가족들 까지도 그것이 정상인것 처럼 받아들이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주인공인 '나'의 형 맬은 어릴때부터 조금 남달랐다. 남이 하지 않은것을 가장 먼저 해보고 싶어서 알몸으로 지붕 안테나를 붙잡기도 하고, 기이한 행동을 일삼곤 했다.

어린 시절, 나는 형이 언제쯤 평범한 하루를 전혀 평범하지 않은 하루로 바꾸어 버릴지 심장과 뼈와 섬유 조직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p163)

그래도 공부도 곧잘하고 외모도 뛰어난 형은 나의 이상형인 '루'와 연인관계이다. 나는 언제나 그 옆에서 루를 바라보는 존재일 뿐이다.

아버지는 승강기를 다루는 기술자로 오래전 승강기 사고로 죽은 이들의 기억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

네 가슴속에 있는 가장 무거운 사진이 무엇이든, 그 사진이 바로 네가 남길 유산이야. 그 사진을 후손에게 남기고 떠나는 거지.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이런거다. 우리에게 사진을 바꿀 만한 시간이 있을까? 아예 그런 사진이 생기지 않도록 피하면서 사는 편이 더 낫진 않을까? (p34)

엄마는 언제나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주며 봉사하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살고 있다. 그녀에겐 돌봐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삶의 이유였다.

맬이 스물다섯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날, 그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의 과도기.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는 지났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때는 아직 오지 않은 인생의 과도기 말이야. (p172)

그는 이유를 말하지 않은채 그날부터 침대에 들어가 나오지를 않는다. 하루가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것은 일상이 되어 버리고, 이제 맬은 630 킬로그램이 넘는 몸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누워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며 팬레터를 보내는 상황까지 이르고, 루는 그런 맬을 끝까지 바라보다 결국 벗어나기 위해 '나'와 여행을 떠난다.

드디어이 침대에서 나오지 않은지 7483일째 되던날, 아버지는 그를 집밖으로 들어올리기 위한 기계를 작동시키고, 나는 루와 새로운 가정을 만들게 된다. 이때 맬의 입에서 나오는 말. 

 

"형이 우리 가족을 망가뜨렸어."

"아니야. 내가 구원한거야.

나는 엄마에게 누군가를 이십 년 동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렸어, 내가 엄마를 살아 있게 한 거야."

"아버지에겐 새로운 사진을 드렸군."

"그리고 너에게는 루를 줬어."   (p368)

 

맬은 정말 이 이유로 침대에 들어간 것일까?

그가 25번째 생일날 생각한 것들.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자신은 현실 속에서 살아남아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일들.

그렇기에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이 방법 밖에 없었던 것일까?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는 도대체 맬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했었다. 마지막 그의 대답을 들었을때 그래야만 했던 그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나의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 뭐, 소설을 쓴 작가 마음이지 내가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

소재 자체는 무척 신선하다. 이런 소재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내용을 상당히 흡입력 있게 표현해 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과거와 현실을 들락날락 하기에 지루하지 않았다. 대단한 사건 전개가 없음에도...

또 한가지 이번에도 이 번역자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능력일까, 번역가의 능력일까?

정말 쳐질수 밖에 없는 내용을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번역가의 능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검색을 해보니 내가 전에 칭찬해 마지 않았던 <피그맨>,<파이어 크로니클>의 번역가였다. 독자가 이해 하기 쉽게, 읽어 내려가기 편하게, 우리말을 정말 이리저리 잘 맞춰가며 번역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인지 오탈자가 아닌가 하는 다음 문장도 일부러 그렇게 써 놓은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지금 집에 안 없으니까 그렇지. 시장실 청소를 하러 갔어. 돌아올 때쯤엔 난 여기 없을거야." (p150)

[안 없으니까]는 [안 계시니까]나, 그냥 [없으니까]로 고쳐야 하는데, 맬이 당황해서 한 답변을 [안 없으니까]라고  표현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번역자 자신만 알고 있겠지?^^

 

소재이 신선함이나 문장력, 번역의 완성도 면에서는 한번 읽어볼 만하다.

그래도 이해는 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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