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 삶.사람.사물을 대하는 김정희의 지혜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지은이  설흔

 

네가 남기고 간 문장 하나가 좀처럼 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를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문장 말이다. (p5)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시절 아들에게 썼음직한 편지형식을 빌려, 그의 삶, 사람 사물을 대하는 지혜를 그리고 있다. (나는 정말 아들에게 편지를 쓴것을 풀이한 것인줄 알았다.^^)

그의 서신과 그림, 또 그가 쓴 책들, 그리고 전해 내려오는 에피소드를 한데 엮어 하나의 아름다운 소설을 완성하였다.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빌어 그가 세상을 바라보며 쌓은 지혜의 말들이 책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얻게 된 문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 그곳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의 인연, 또 그 인연을 통해 얻어진 그의 넓어진 식견. 이 모든것들을 아들에게 해 주고 싶은 교훈의 편지에 담아내었다.

 

시작은 이렇다.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는 아버지를 뵈러 온 아들.

김정희는 그에게 원하는 책을 가져오라 일러두었지만 아들은 그 책을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제주도에 간다. 천성이 선하고 유약한 아들이 아버지의 부탁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자 못 미더운 나머지 호통을 치고 훈계를 하게 된다. 아들은 끝내 말 한마디 마음껏 뱉지 못하고 그림 한장에 힘겨운 문장을 토해놓고 길을 떠난다.

"나를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아들에게 추사는 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가 아들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는 다섯가지로 귀결된다.

첫째, 혹독한 관리의 차가운 손을 기억하라.

이제 너는 알 것이다. 혹독한 관리가 혹독한 관리만은 아님을. 혹독한 관리는 실은 너의 손이고, 너의 마음임을. 구부러지기 쉬운 현실에서도 언제나 꿋꿋하고 냉정한 너의 손과 마음임을. (p39)

둘째, 사물의 올바른 위치를 기억하라.

토착민들은 수선화 귀한 줄을 몰라서 우마에게 먹이거나 짓밟아 버립니다. 보리밭에 유독 많이 난 까닭에 호미로 파내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파내어도 곧 다시 나는 터에 아예 원수 보듯하고 있답니다. 사물이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이와 같습니다. (p54)

셋째, 아랫목이 그리우면 문부터 찾아서 열어라

옹방강과 완원이 뜨뜻한 아랫목이었다면 박제가는 그 아랫목을 차지하기 위해 내가 열어야 할 조선 땅의 유일한 문이었다. (p100)

넷째, 맹렬과 진심으로 요구하라.

맹렬과 진심으로 요구를 하되, 당당히 하라. 목숨을 걸고 하라. 그래야 너의 진정성이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p166)

다섯째, 너의 <세한도>를 남겨라.

"나를 닮고 싶으냐? 아마 너는 그렇수 없을 것이다."

이제 와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냐고? 나를 닮으려는 너를 위한 문장들을 늘어놓다가 지금에 이른 나는 너에게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 왜 그런 것일까? 답은 늘 그렇듯 간단하다. 너는 너이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너는 너여야지 내가 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너는 너여야만 너의 길을 갈수 있기 때문이다. (p198)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두고 행동하며,

사람이나 사물이나 있어야 할 곳에 있을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적확한 통로를 찾을 것이며, (아랫목과 문을 혼동하면 안되며)

모든 일에 열정과 진심을 담고,

너만의 길을 찾아 나아가라.

그의 삶속에 녹아 내려온 지혜로운 말이 모두 담겨 있는 듯 하다.

처음엔 아들에게 나름 혹독한 교훈을 주려했던 추사의 편지가 "너의 <세한도>를 남겨라."로 마무리 되었음에 나는 상당히 고무되었었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아들에게 바라는 것도 많고, 기대하는 것도 많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지만 결국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너만의 길을 찾으라는 말이 진정한 사랑이 가득한 아버지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추사가 정말로 바라는 아들의 모습이 편지의 끝머리에 가득하다.

나는 네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무거운 이슬, 돋아나는 풀, 깊은 산, 길게 지는 해, 네가 머무는 곳에 향을 남기는 사람, 네가 없더라도 향으로 네 자취를 남기는 사람. (p205)

 

추사의 서신과 책, 주위사람들과의 정황으로 이 모든 것을 그려나간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마 추사가 실제 편지를 썼다면 정말이지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 장르를 '인문실용소설'이라고 분류해 놓았을까?

그 시대상에 맞는 구어체 문장을  읽기 쉽도록 매끄럽게 구사한 것 또한 작가의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추사의 서신들과 책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세상에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장래를 새롭게 열어가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꼭 한 번 읽어보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