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헌터
존 더글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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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천을 받아서 읽게 된 책입니다. 국내에서는 1999년 <마음의 사냥꾼>,  2006년 <마인드헌터>, 그리고 2017년 <마인드헌터> 세 번에 걸쳐 재발매 되었습니다. 세 권의 표지가 각각 다른데 어느 것도 이 책의 매력을 잘 잡아내지는 못한 표지인 것 같습니다. 아, 이 책은 소설이 아닙니다. FBI의 살아있는 전설 '존 더글라스 요원'이 만났던 수많은 연쇄 살인범의 행적을 서술하고 분석한 책입니다. 한편으로는 경찰 수사에 프로파일링이라는 기법을 적용한 FBI의 BAU(Behavior Analysis Unit, 행동 분석팀) 팀의 성장을 다룬 책이기도 하죠. 존 더글라스와 BAU에 영감을 받은 수많은 작품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미국 CBS 채널의 <크리미널 마인드> 나 '토머스 해리스'의 <한니발>, 최근에는 Netflix의 <마인드 헌터>가 있겠습니다.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된 책인 만큼 중독성이 강한 책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책에 급격히 빠져들어 잠도 미루고 읽는 경험을 했네요.



2. 책의 소재 자체가 흥미진진할뿐더러 저자의 말재주가 상당합니다. 연쇄 살인범과의 실전 경험을 통해 갈고닦은 말재주를 독자를 상대로 유감없이 풀어 놓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입니다. 기본적으로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번역의 출중함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종인 님은 당대에 얼마 남지 않은 번역 장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서인 <숨결이 바람 될 때>, <블랙 달리아> 등을 감탄을 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책 또한 3할 이상은 번역자의 필력에 기대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하루 정도 책을 덮고 다시 펼쳤을 때에도, 건장한 미국 FBI 요원의 말투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경험은 이종인 님의 번역을 빼고 논하기 어렵겠습니다.




3. 연쇄 살인에 관한 책으로 이미 손꼽히는 책이 몇 권 있는데요. 이 책은 그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할만합니다. 연쇄 살인 각각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 나열과, 인과관계가 선명한 논리적인 추론은 소설 속 살인과는 또 다른 흥미진진함이 가득한 세계였습니다.(심지어 이건 진짜 세계의 사건입니다.) 또 연쇄 살인범을 쫓고, 특징을 특정 짓는 이론이 점차 발전해 나감에 따라, 연방수사기관의 특별부서로 성장하는 BAU를 지켜보는 뿌듯함도 느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프로파일링이 장기 미제 사건 등에  필수적인 역할을 차지함에 따라, 점차 늘어나는 요구도에 비례하는 업무의 과중함이 생생히 느껴지더군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BAU 부서장 역할이었던 에런 하치너가 왜 매일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4. 이 책의 단점은 '그것이 알고 싶다'와 비슷합니다. 책은 저자가 다루었던 수많은 케이스 중 독자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많은 극적인 사건만을 나열합니다. 따라서 살인사건의 진실이나 수사 기법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잔인한 범죄를 단지 오락거리로 만드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백인, 여성, 유소년 위주의 살인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었는데요. 이렇듯 스릴러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건의 유형은 현실 살인이 우려내는 잔혹함을 흥행을 위해 소모하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또, 프로파일링 기법에 부정적인 기타 의견을 지나치게 비난하는 모습도 보이더군요. 저자의 자전적이고 일치율이 높았던 일부 프로파일링에 대한 기술만으로는 '프로파일링은 과학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문헌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여전히 프로파일링이란 과학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까우며, 논란 중인 수사 기법임이 사실입니다.


5. '그것이 알고 싶다.' 류의 실존 사건을 토대로 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나, '범죄 논픽션' 마니아 중 아직도 이 책을 접하지 못한 분, 휴가철에 읽을 재미있고 두껍고 빽빽한 책을 원하는 분, 번역이 뛰어난 책을 원하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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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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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영하> 7편의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소설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호흡이 긴 소설을 선호합니다. 따라서 소설집을 읽는 일은 특별히 마음먹고 읽는 일을 제외하고는 적은 편입니다. 이 책을 고른 건 김영하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알쓸신잡' 같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등장한 이후에 각광받기 시작했지만, 원래부터 좋은 이야기꾼, 좋은 소설가였습니다. 소설 읽기를 시작한 뒤로 김영하 님의 소설에서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소설을 읽고 포스팅을 했을 뿐만 아니라, 몇몇 인터뷰를 스크랩하기도 했었습니다.




<스타일> 김영하 작가는 정상을 비트는 파격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지만, 정석이 무엇인지 또한 아는 작가입니다. 각각의 소설에 꼭 맞는 문장을 제시하는 스타일리스트이면서도, 이야기의 흐름에  막힘이 없는 이야기꾼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집에서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나더군요. 모든 소설들이 바르게 배열된 소설들이었지만, 각각의 방식으로 파격성을 가지고 있었고 문장은 경쾌했습니다. 마치 잘생긴 카멜레온 같은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각각의 소설의 끝에는 민감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신은 어느 편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느 편도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옅은 색채였습니다. 하지만 보수, 진보, 페미니스트, 반 페미니스트의 맨 끝에 위치해서 각자의 올바름을 강요하는 현재 흐름보다는 마음이 기울더군요. 사실 김영하식 방식이야말로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현실 문제에 올바른 문제 제기 방식으로 생각되었으며,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단편소설> 단편집이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두터운 중단편에 느껴지더군요. 그만큼 문장 하나하나의 밀도가 높은 소설들이었습니다. 이런 면모는 호흡이 짧은 단편소설의 단점을 적당히 상쇄합니다. 짧은 이야기임에도 감정의 흐름이 굵직하게 전해져 '역시 김영하'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작가의 근작인 '살인자의 기억법'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한국 문학 주류를 대표하는 작가의 소설 같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살인자의 기억법' 인터뷰를 통해 주위에서 반대하는 소설이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반면 '오직 두 사람'은 작가의 '인싸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이야말로 한국 문학의 주류를 대표하는 작가의 소설 같아요. 그보다 더 글을 잘 쓰는 작가는 있을지 몰라도 폭넓은 즐거움을 주는, 다양한 시선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작가는 드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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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계절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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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휴고상 최초 3년 연속 수상'이라는 타이틀에 이끌려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작가 'NK 제이신'은 이 책을 시작으로 3부작의 '부서진 대지 시리즈'로 2016년, 2017년, 2018년 3년 연속으로 '휴고상 최우수 장편 부분'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동안, 백인과 남성에 편중돼있는 휴고상 수상작 리스트에 대한 불만이 제기됐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2016년 NK 제미 신이 '다섯 번째 계절'로 휴고상을 수상하자, 작품성보다는 '소수 인종 혹은 여성 우대'가 작용된 투표가 아닌가'라고 말하는 회의론자들 또한 있었습니다. 이에 작가 NK 제미신은 휴고상 수락연설에서 "아마 반대론자들이 있겠죠.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제가 이 자리에서 상을 받는 이유는 이전에 이 상을 받았던 사람들과 똑같은 이유에요. 그건 바로 제가 엄청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죠"라고 답했습니다. 



2. 좋은 이야기를 꾸미는 다양한 수식어들이 있습니다. '눈물 콧물을 쏙 빼는 감동',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가독성', '흠잡을 데 없는 문장력' 같은 표현들이 종종 사용됩니다. 하지만 제가 가끔씩 만나는 최고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다른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각까지 자극하는 책'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완벽하게 짜인 세계관에, 입체적인 등장인물의 촘촘한 동선,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굴곡 넘치는 이야기는 시각적, 공각적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내다 못해 후각까지도 자극합니다.



 후각까지 자극하는 책, 이 소설에 그 표현을 사용하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비 내리는 초원의 '습한 곰팡이' 내음이 납니다. 또, 외딴섬마을의 '소금기 담긴 공기'가 느껴집니다. 누덕누덕한 모피를 둘둘 감고 있을 때의 불쾌한 '퀴퀴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몰입하는 순간부터, 고요 대륙으로 빨려 들어가 오감을 모두 장악 당했습니다. 



3. 소설의 첫 몇 장 동안은 상당히 혼란스럽더군요. 로봇 부족원들로만 이루어진 마을의 추장 같은 인공적인 말투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1인칭 내레이션은, '비평가들에게만 인정받는 포스트모더니즘 SF 소설'이라는 단어를 잠시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글의 작은 줄거리에서 큰 흐름으로, 또 수동적인 관찰자 입장에서 능동적인 독자 입장으로 변화함에 따라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고전적인 어투는 점차 우아하고 중독성 있게 느껴지더군요. 옮긴이 박슬라님은 좋은 번역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거사 크리스티'의 소설과 몇 편의 장르소설에 참여하셨더군요. 번역된 다른 책들도 보관함에 담아 놓았으면 천천히 읽어 볼 생각입니다.



4. 1부는 한 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612쪽의 두툼한 소설입니다. 두꺼울뿐만 아니라 서술의 밀도가 높아, 한바탕 읽고나면 머리속이 뻑뻑한 기분이 들더군요. 이야기는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간의 대립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긴장감은, 비단 가상 세계에서의 핍박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아닐 겁니다. 소수 계층을 향한 차별과 학살, 때때로 드러나는 집단적인 폭거는, 우리 사회 소수 인종과 성소수자들에 대한 따돌림, 괴롭힘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가 어떤 문제에 접근하려고 하며, 어떤 문제를 구체화시키고 싶은지 선명하게 유추할 수 있더군요. 


 서로 다른 여성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각각의 내용은 밝혀질수록 흥미로웠습니다. 결말부에서는 시점을 이용한 반전 또한 등장합니다. 이런 장점은 압도적인 이야기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린라이트가 반짝거리며 들어오는 것 같은 만족스러움이 느껴지더군요. 예, 맞습니다. 치킨맛집이 치킨무도 맛있는 집이었다는 그런 행복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5. 소설이 발간될 때마다 자동으로 책장을 채우게 되는 몇 명의 작가가 있는데요. 2020년, 제 책장은 NK 제미신의 책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판타지 문학의 또 다른 교과서입니다. 독자가 입문자던지, 아니면 전문가던지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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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무 이름 사전
박상진 지음 / 눌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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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무 이름 사전 같은 책은 소장용으로 구입하곤 합니다. 각진 하드커버 책을 책장에 보관하고 가끔씩 한 번씩 들쳐보는 일은 새로운 분야에 소소한 지식을 쌓아가는 즐거움을 줍니다. 또, 책장을 수려한 색의 하드커버 표지 책으로 채운다는 행위 자체가, 지성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  솔직히 지적 충만감보다는 지적 허영심이 소장의 이유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소장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책이었습니다. 보들보들한 표지는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그립감도 좋습니다. 정갈하게 구획된 문단의 구조나, 순우리말 이름의 어원에 관해 쉽게 풀어가는 이야기는 짧게 끊어 읽기 적당해서, 책의 어느 곳을 펼치고 시작해도 관련 지식의  언저리에 쉽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 박상진 교수님은 오랜 시간 나무 연구에 힘써온 연구자시더군요. 나무에 관한 정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나무 이름의 어원과 유래였는데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유럽 등에서 나무들이 어떻게 불리는지에 비교하며 서술하고 있었습니다. 독자로서는 각각의 나무에 대한 가치나 의의를 더 깊숙하게 알 수 있더군요. 대표적인 나무의 나뭇잎은 정교하게 채색된 삽화를 통해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책과 비교의 기준으로 삼은건 소장하고 있는 '허브'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제카의 허브' (제카 맥비커, RGB, 2009년 )라는 책인데요.




 완성도 높은 기획력, 가독성 좋은 구성에 비해, 책이 제공하는 정보 제공 측면에서 부족한 면이 느껴졌습니다. 구석 작은 단락 하나까지 전문적인 정보를 빼곡히 담고 있는, 비교 군의 책에 비해 사진과 정보가 많이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약소하더라도 각 나무의 전신 모습을 담아냈다면 나무의 질감도 느껴지면서, 전체적인 분위기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주었을 거라고 생각 들었습니다. 이 책을 소설에 비교하자면 빽빽한 문장으로 가득 채워진 구미권 스릴러라기보다는 가독성이 성긴 일본의 코지 미스터리 같은 같은 책입니다. 개정판이 나온다면  하드커버 표지의 가치에  맞는 더 많은 지식을 깨알같이 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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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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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에 출간된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소설의 드라마화로 핫한 작가가 된 정세랑님의 소설입니다. 인터뷰에 의하면 "만약 지난 세기 여성 예술가들이 일찍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뤘다면 어땠을까?"같은 의문에서 시작된 소설입니다. 일가의 중심인 심시선 할머니가 강연, 인터뷰, 회고록 같은 수단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부분과, 그녀의 가족들의 대화를 통해 흘러가는 두 줄기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됩니다.


읽은 것 자체가 후회스럽고, 읽는 동안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던 소설입니다. 매듭을 짖기까지, 적절한 완성도의 구성을 갖춘다거나, 양질의 가독성으로 독자에게 어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더군요. 등장인물의 대화 위주로 진행되는 소설은 시종일관 산만했습니다. 이런 산만함은 결국 주제의식, 구성, 예지력 같은 소설을 소설답게 만드는 요소를 이야기에 끌어들이지 못하고 거대한 먼지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게 만듭니다.


이것이 소설이야, 이것이 정세랑이야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진심으로 할 말이 없습니다. 많은 등장인물은 저마다의 개성이 드러나기에는, 등장 시간이 너무 짧거나, 평면적입니다. 인물의 괴팍한 성격이나 특수한 상황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작가라면 인물을 둘러싼 환경을 천천히 어루만져 주고 성격이 우러나오기까지 힘써야 합니다. 하지만 정세랑 작가는 소설의 첫 장부터 판타지 소설 속 그것 같이, '가계도' 붙여 놓고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틔어지는 되는 인물 관계에는 관심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몇 편의 리뷰를 찾아봤는데, (심지어 호의적인 리뷰에서도)가계도가 없이는 소설의 흐름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작가의 후기에 쓰여있는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문장은 대단히 우아하지만, 오만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정도 소설에, 이 정도 이야기 깊이나 관계의 파격이, 21세기를 대표하는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건 분명히 교만한 겁니다. 20세기를 살았던 여성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를 지나치게 얇은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도 불편했습니다. 이 소설 속에 통속소설 속 비운의 여자의 삶이나 칙릿 소설속 상업적인 캐릭터를 뛰어넘는 어떤 철학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무엇보다 지루한 소설이었습니다. 딱히 반짝이는 지점도 가독성을 증대시키는 부위도, 출중한 메시지도, 긴박한 구성이나, 반전, 아무것도 등장하지 않는 소설입니다. 주요 서점의 차트 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핫한 작가의 소설, 그것만이 이 소설의 유일한 장점처럼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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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우지 2023-04-06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공감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자꾸 그만 읽고싶어 지고 각 장에 심시선 할머니 부분만 읽으며 스킵하게 되는 이유를 까오지 님의 글을 보며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오만함이랄까요 뭔가 우월함이랄까요; 저한테는 글이 거북하게 보입니다.

jibae2dda 2023-08-14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독성이 너무 떨어져요. 세대를 아우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