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필기구 중에서 연필을 가장 좋아한다. 종이에 닿으면 내는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좋고, 시간이 흐를수록 짧아지는 모습도 좋다. 짧아진 만큼 내가 열심히 썼다는 증거니까. 책을 선택할 때 작가나 출판사를 보고 고르는 편인데, 이 책은 표지를 보자마자 반해서 선택했다. 작가나 출판사를 보지 않고 고른 것은 처음이다. '호두나무 작업실'이라는 제목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예술 쪽에 종사하는 분이 쓰셨구나 했다. 택배가 도착해서 처음 책을 만났을 때, 무척 설렜다. 스케치화는 띠지 같은 겉표지였다. 속의 진짜 겉표지는 작가님의 작업실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부제는 '붓끝을 따라가는 화가의 하루하루'
저자인 소윤경 작가님은 경기도 양평에 있는 '호두나무 작업실'에서 일러스트를 작업하시는 작가님이다. 주로 판타지 동화를 작업하신 분이라고 한다. 죄송하게도 이 분 작업물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작품은 최근에 나온 <우주로 가는 계단>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어보니 <레스토랑 Sal>은 아이들에게 반응이 좋은 것 같고, <내가 기르던 떡붕이>는 작가님의 실제 경험이 녹아 있는 작품이었다. 이 두 작품은 꼭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부제에 걸맞게 이 책은 화가의 하루하루를 쓴 작품이다. 글들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반려동물 '떡붕이' 이야기와 '프리랜서의 순발력' 그리고 '삽화의 말로'라는 제목의 글이다. '떡붕이'는 작가님이 대학 졸업 후 작업을 할 무렵에 만난 반려동물이었다. 양평으로 이사를 와서 집 정리를 하는 와중에 정원에 잠깐 놀라고 놓아준 사이에 없어졌고,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 작가님은 첫 그림책인 <내가 기르던 떡붕이>를 작업하던 중이었다. 오랫동안 기르던 거북이가 집을 나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모험을 한 뒤에 다시 돌아오는 내용이었는데, 그 일이 실제 벌어진 것이다. 떡붕이는 며칠 뒤, 마을 골목길을 기어내려가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로는 행방이 모연하다고 했다. 떡붕이의 실종 이후 상실감으로 작업 중이던 작품을 반년간 못하셨다고 한다. 떡붕이가 거북이답게 느릿느릿 여행을 마치고, 그림책의 결말처럼 작가님 정원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프리랜서의 순발력'은 글을 대하는 작가님의 마음이 나타나 있어서 좋았다. 한 달에 한 번 그림책에 대한 칼럼을 모 신문사에 연재하시는데, 될 수 있으면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신인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려고 하신다고 했다. 글을 쓸 때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시는 면모가 드러나서 좋았다.

칼럼의 원고 분량은 A4 용지로 한 장 미만이지만 글쓰기가 내 직업이 아닌지라 2~3일씩 끙끙대며 겨우겨우 완성한다. 혹여 글이 형편없어 그림책 작가가 쓸 수 있는 귀한 지면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 수차례 소리 내서 읽어보며 마감일을 맞춘다. p.78

나의 실수로 누군가의 자리가 없어진다는 책임감은 오랜 세월 한 분야에서 일한 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삽화의 말로'는 마음이 아픈 내용이었다. 글 작가와 그림작가가 따로 있는 그림책의 경우, 글 작가가 계약 만료를 이유로 다른 출판사로 옮겨가면 그림작가의 계약도 자동 파기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글은 출판사를 옮겨가며 다른 그림작가의 작품으로 재탄생이 가능하지만, 그림은 그게 불가능하다고 해서 놀랐다.

동화 삽화는 아무리 좋은 그림을 그려도 그 책의 주인공이 되기 어렵다. 이미지를 확장시키고 글의 흐름에 긴장감을 더해서 상품으로서 구매력을 끌어올리지만, 하나의 작품으로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동화 삽화를 열정적으로 작업해 온 나 같은 작가들은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그럼에도 동화에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 책장을 넘기다 만나게 되는 그림이란 독자에게 얼마나 내적으로 긴밀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p.100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을 접할 기회가 많지만 사실 글 작가를 위주로 봤지, 그림작가의 존재를 생각을 잘 안 했던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책에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글자나 그림작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삽화의 존재감은 참 크다. 나도 이 책을 그림 때문에 선택했을 정도니까. 앞으로는 그림작가님들도 눈여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외에도 반려견 보리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등등이 있다. 작업실에서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하는 작가의 모습은 일종의 '화가의 상징'처럼 되어있지만 실상은 고단한 자영업자, 프리랜서의 삶이라는 내용에서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자신을 갈고닦아야만 수입이 들어오는 작가의 비애를 느낄 수 있었다.
화가의 하루를 담담하게 쓴 책이라서 읽기 좋았다. 읽으면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책이다. 힐링할 만한 책을 찾는 분이라면 추천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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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일 일상을 철학 하는 매거진 <뉴필로소퍼> 일상을 철학 한다는 문구가 인상적이었고, 이 잡지를 알기 전에 철학 만화책 하나를 독파해서 철학에 호기심이 생기던 차였습니다.
도착한 뉴필로소퍼! 표지가 부들부들한 종이 느낌이라 촉감이 참 좋았어요. 비닐로 포장되지 않은, 종이 느낌의 표지. 표지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잡지였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호주에서 만든 잡지를 바다출판사에서 한국판으로 내는 것 같았어요. 우리나라만 해도 수십가지의 잡지가 있는데 이 잡지를 찾아낸 바다출판사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잡지를 읽어보니 한 가지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는 잡지였습니다. '변화'를 주제로 다양한 글이 실려 있었어요. 글이 어렵지 않아서 안도했지요. 이 잡지에 실린 글 중에서 나이젤 워버튼의 <예기치 못한 변화를 대비하는 자세>와 고전 읽기 코너의 <마음이 변하다>, 그림형제의 글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자는 비유가 너무 웃겨서, 후자는 불륜의 비극이 나와서 재미있었어요. 

나이젤 워버튼은 <예기치 못한 변화를 대비하는 자세> 에서 예기치 못한 변화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상황을 빨리 인지해서 우리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것 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이 글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외계인 비유 때문이었어요.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해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지구의 환경은 10년 안에 재앙의 임계점을 넘어설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 대부분에게 이것은 예기치 못한 변화가 아니다. 이미 멈출 수 없어 보이는 어떤 사태가 예상보다 조금 빠르게 진행된 것뿐이다. 그러나 다섯 개의 팔과 녹색 피부, 엄청난 지적능력을 지닌 외계인 무리가 다른 은하계로부터 날아와서 인간 고기의 맛에 푹 빠지고, 한때 소를 키우던 축사에서 인간을 키우고, 인간 햄을 올린 토스트를 즐기게 된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에 찾아온 예기치 못한 변화가 될 것이다. p.29 



창의적인 비유여서 기억에 남았네요. 우리가 외계인의 토스트의 토핑이 될 가능성은 적지만 혹시 모르죠. 

만약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외계인에게 들키면 안된다는 것을 빨리 깨닫고 지하로 들어가던지 해야될 겁니다. 이처럼 확률이 낮은 변화는 미지의 세계이고, 이건 진짜 두려운 상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코로나19 사태처럼요.



그림형제의 <뱀이 가져온 잎사귀>는 공주의 변덕이 불러온 비극 이야기예요. 그림형제의 동화는 예전에 읽어봤지만 이 내용은 처음 보는 거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 가난한 젊은이가 전쟁터로 나가 공을 세워서 왕국 군대의 제 1 대대장이 됩니다. 왕은 이 젊은이를 공주와 결혼시키려고 하는데, 이 공주가 결혼 조건으로 내건 게, '내가 죽을 경우 산 채로 같이 묻힐 사람'을 신랑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거였어요. 남편이 먼저 죽으면 자기도 산 채로 뭍히겠다고 하면서요.(과연?) 이 가난한 젊은이, 공주를 보자마자 반해버려서 앞뒤 안 재고 공주의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한동안 잘 살았는데, 공주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죽었어요. 젊은이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왕의 군대에 의해 결국 공주의 관과 함께 지하 납골당에 갇힙니다. 그런데 납골당 구석에서 뱀이 나와 공주의 시신 쪽으로 다가가는 거예요. 젊은이는 이 뱀을 죽입니다. 다른 뱀이 나와서 뱀이 죽은 걸 보더니 나뭇잎을 가져와서 놓아줍니다. 그랬더니 죽은 뱀이 다시 되살아납니다! 젊은이는 이 나뭇잎으로 공주를 되살려요. 왕은 크게 기뻐했지요. 젊은이는 이 나뭇잎을 부하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니 잘 보관하라고 신신당부하며 맡깁니다. 한편 공주는 되살아난 이후, 젊은이에 대한 사랑이 식은 걸 느낍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젊은이는 연로한 아버지를 뵈러 공주와 함께 배를 탔는데, 공주가 선장과 눈이 맞아버렸습니다(!) 선장과 공모해서 젊은이를 바다에 던져버려요. 이를 보고 있던 부하가 젊은이의 시신을 수습해서 나뭇잎으로 되살리고 다시 왕국으로 돌아갑니다. 공주보다 먼저 도착한 젊은이는 왕에게 공주의 부정을 고하지요. 젊은이는 숨고, 뒤이어 도착한 공주에게 왕이 젊은이의 행방을 묻자 아파서 죽었어요...라고 합니다. 왕은 크게 분노하며 공주를 꾸짖고 선장과 공주를 구멍 뚫린 배에 태워 바다로 보내버립니다.



공주가 젊은이에 대한 마음이 변한 댓가로 치른 건 죽음이었죠. 읽으면서 현실이라면 왕은 젊은이를 죽이고 공주랑 선장을 결혼시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네요. 아니면 왕이 저런 벌을 내린 건, 아마 젊은이가 신하들이 많은 곳에서 사실을 말하는 바람에 왕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저런 식으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거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ㅎㅎ

이 잡지에서 또 재밌었던 코너는 건 명언 모음 페이지나 변화 관련 어휘들을 모은 페이지였어요. 변화라는 주제를 글로도 풀어내고, 어휘로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재미있는 코너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잡지에 나온 존 로크의 말로 리뷰를 마무리할께요. 변화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생각해보고픈 분들이라면 이 잡지를 추천합니다!



새로운 의견은 다른 이유가 없어도 단지 그것이 이미 보편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의심받고 종종 거부당한다

- 존 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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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생각이 너무 많아 - 남다른 아이와 세심한 엄마를 위한 심리 처방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부제는 <남다른 아이와 세심한 엄마를 위한 심리 처방>이다. 부제에 끌려서 이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프랑스의 심리치료 전문가로, 주요 관심 분야는 '정신적 과잉 행동'과 '심리 조종'이라고 한다. 전작으로는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가 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고 나서 이 책을 보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전작은 읽지 못했는데, 이 책에 나온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건데, 전작은 정신적 과잉 행동을 보이는 아이 입장에서 쓴 책이고, 이 책은 부모가 정신적 과잉 행동인 자녀를 두었을 경우 어떻게 지도해야 좋을지를 다룬 책이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 이란?

저자는 흔히 자폐, 영재, 조숙, AD/HD 또는 재퍼(zapper)라고 정의되는 아이들을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라고 칭한다. 전자의 개념들이 아이에게 일명 '딱지 붙이기', 즉 낙인을 찍는 개념이라면,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는 개념이다. 조숙은 아이가 지적으로만 앞서 있고 감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부정적 인식이 들어간 개념이고, 영재는 그 검사의 신뢰성이 극히 낮은 데 반면, 이 아이를 지도할 선생님에게 학습능력이 뛰어난 아이이니 성적이 나쁘면 그저 공부를 안한 것이라는 선입견을 심어주는 개념이라 좋지 않다는 것이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일반인에 비해 뇌가 극도로 민감한 사람들이다. 일반인과는 다른 구조로 사고를 하기 때문에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이해하기가 어렵다. 저자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일반인들의 사고방식을 '생각 열차'로 설명한다. 일반인들은 열차의 칸칸마다 생각을 넣고, 직선적으로 사고를 한다. 그들의 사고는 논리적 추론을 거쳐서 무사히 종착역까지 다다른다. 이 사고의 단점은 융합이 어렵다는 데 있다.

반면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은 관념들은 별 모양으로 퍼져 나가고 각기 다시 새로운 열 개의 관념으로 뻗어 나간다. 복합적으로, 융합적으로 사고하는데 그들은 천재적인 뇌를 가지고 있다.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들의 감각기관과 뇌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데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결과를 내는 데는 젬병이다.

저자가 이 둘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두 직원이 있는데, 한 직원은 일을 하나씩 처리해서 여섯 개의 업무를 마쳤다. 다른 직원은 열 건을 한꺼번에 들여다보면서 각각 70%씩 마무리를 했다. 사장 입장에서 누가 더 뛰어난 직원이라고 생각할까? 이렇기 때문에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많은 일들을 해내고, 뛰어난 학습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부모의 역할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저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부모가 이런 정신적 과잉 행동을 보이는 자녀를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런 자녀를 지도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가 첫째는 한계 설정과 둘째는 따뜻한 격려이다.

한계 설정은 아이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명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안 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가령, 비유적으로 돌려 말하면 알아듣지 못한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복도에서 뛰는 사람이 어디 있니?' 이렇게 말하면 아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복도는 미끄러지기 쉬우니까 뛰면 위험하다'라는 식으로 풀어서 설명을 해줘야 하는 식이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속내를 너무 투명하게 내비치면 안 된다는 것 등을 매우 섬세하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챕터는 내게도 큰 도움이 되었는데, 내가 알려주고 싶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던 개념들을 쉽게 풀이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거짓말. 거짓을 말하는 기술은 만 8세 전후에 습득되는 것으로 보인다. 거짓말도 인간들의 커뮤니케이션에 들어와 있는 일부분이다...중략...여러분의 아이에게 의도와 행위의 차이를 가르쳐 주자. 거짓말이라는 행위에도 긍정적인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중략...'위선'과 '인사치레'의 차이는 의도에 있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은 애 어른을 막론하고 사람이 지나치게 투명하다. 그들은 자기만의 비밀의 화원을 가꾸고 자신의 내밀한 부분을 보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194 페이지

따뜻한 격려는 이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이 비난받기 쉽다는 데에 있다. 위에 제시한 거짓말에서도 '지나치게 투명하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 틈 속에서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이 배워야 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제시했던 자폐, 조숙 등의 개념도 이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이 사회생활을 해내는 데 있어 부정적인 자기 인식을 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뇌의 활동 방식이 다른 것이라 고칠 수가 없는 것이고, 고쳐야 하는 질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위축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저자는 정신적 과잉 활동성을 호의적이고 온화하게 받아주는 분위기에서 성장하는 사람은 외상 후 스트레스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온화한 곳이 아니기에 아이에게 명확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끔 커뮤니케이션하는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기술 중 하나는 내게도 매우 유용한 것이었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같은 반에 달리기를 아주 잘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달리기만 했다 하면 일등은 그 친구 차지다. 그래서 "우와, 너 달리기 짱이다!"라고 감탄을 했다. 그 친구가 뭐라고 대꾸했으면 좋겠는가...중략



"아, 고마워! 맞아, 난 달리기가 좋아.! 그래서 가끔 연습을 해."



아이는 상대를 3자극하지 않고 공손하게 대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일단 칭찬을 들으면 '고마워'라는 말부터 꼭 하게끔 습관을 들여주자. 그다음에는 그 활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주 하게 됐다는 말을 덧붙인다.

140 페이지

부모와 아이를 위한 섬세한 처방전

이 책은 정신적 과잉 활동인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내게도 매우 유익한 조언이 가득했던 책이었다. 어느 책에서 '안녕하세요/안녕히 가세요'에 담긴 의미를 풀어주겠는가? 이처럼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에 대한 교육법은 내게 언어 교육 특히 사회 규칙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도움을 주었다. 특히 아이가 4살이 되면서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늘었는데,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끼리 서로 장난감을 뺏는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했다. 내 아이의 경우 힘이 그렇게 센 편이 아니라서 장난감을 뺏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렇게 되면 양쪽 부모가 서로 난처한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만 5세 이상의 아동이라면 필히 '자기 주장'하는 법을 가르치라고 조언하면서 이 갈등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아이가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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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의 발견 - 서로에게 축복이 되는 형제자매 관계를 위한
안셀름 그륀 지음, 김선태 옮김 / 생활성서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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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이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하면서 맏이로써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부모님이 은퇴를 준비하고 계시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서서히 준비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이 싹트는 시기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예전부터 지인이 이런 신부님이 계시다고 말을 해줘서 알고는 있었지만 책을 읽는 건 처음이었다. 실제 일곱 명의 형제 자매가 있으시다는 신부님께서 우애에 관해 어떻게 이야기를 하시는 지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동생들과 지금처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랬다.

성공적인 삶의 다섯 가지 조건

동생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나의 소망의 기저에는 '성공적인 삶'을 향한 갈망이 있다. 유산다툼을 하거나, 동생과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로 논쟁을 벌이기 싫은 것이다. 동생들과 부모님과 다툼없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내가 그리는 성공적인 삶이다. '행복'한 삶.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소중하게 서로를 여기고, 지지받는 삶을 꿈꾼다.



행복이란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것, 곧 자신의 내밀한 본질인 영혼과 일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74페이지



안셀름 그륀 신부님이 사람들과 상담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갈망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주셨다.



첫째, 정체성을 향한 갈망. 나의 참된 본질인 유일무이한 자아를 만날 때, 삶은 충만해진다.

둘째, 결실에 대한 갈망. 좋은 인간관계는 행복한 삶을 위한 결정적 요인이다.

셋째, 마르지 않는 샘의 갈망. 어려운 일을 이겨낼 수 있는 치유의 샘(정원 가꾸기, 성경 읽기 등)에 대한 갈망이다.

넷째, 좋은 관계를 향한 갈망.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사랑하고픈 갈망이다.

다섯째, 사회적 능력에 대한 갈망. 사람들을 서로 결합시켜 사이좋은 관계를 이루어 내는 능력이기도 하고, 신뢰와 희망으로 살아가는 능력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 다섯 가지의 갈망을 가지고 있다. 나 자신과, 내 삶과의 조화, 내 동생들과 서로 지지를 보낼 수 있는 힘,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는 힘. 마지막으로 형제자매를 통해 하느님과 결속되어 있다는 확신. 이걸 깨닫는 게 안셀름 그륀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인 것 같다.



서로를 이해하는 법

이 책은 '우애의 조건'이지만, 읽어보면 결국 형제자매를 통해 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전 과정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그렇다고 탄생부터 죽음까지 연령대로 이야기해주는 건 아니고, 신부님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시다 보니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 단순히 우애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재혼 가정, 이혼 가정의 형제자매 이야기와 유산다툼같은, 어쩌면 수도자들에게는 안 맞는 것 같은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그래서 읽다보면 신부님보다는 심리상담사가 쓴 책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법'이란 챕터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나는 동생이 외국에서 정착을 준비하는 중이라 직접 보기보다는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지금은 동생이 미혼이라 이런 것도 가능하지, 결혼을 하게되면 교류가 거의 끊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경우 나는 동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안셀름 그륀 신부님이 제안하시는 방법은 '유형'을 통해 이해하는 방법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의 유형, 애니어그램, 여성과 남성의 전형성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하기를 권하고 있다. 신부님께서는 '이해'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해는 존립과 연관되어 있다.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당당히 살 수 있고, 결국 잘 견디는 힘이 생긴다.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당당히 존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형제자매에게 이해받고 있음을 알면, 더 행복해질 것이다.

189페이지

결국 형제자매를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건, 세상을 사는 데 가장 큰 힘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부님은 이해의 길을 여는 방법으로 스스로에게 '저 형제자매는 나의 어떤 어두운 모습을 지니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안하신다. 우리가 종종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방에게서 보이는, 스스로 억압했던 나의 모습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나를 보는 거울로 여긴다면, 상대 위에 군림하려 들지 않고, 그를 통해 보이는 나 자신을 더 깊이 깨달으려는 요청으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변화

상대를 통한 나의 모습 보기. 이건 비단 형제자매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기준이기도 할 것이다. 앞서 읽은 심리서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신부님께서 제안하신 질문은 내게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나의 어떤 모습인가?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상대방에게 군림하지 않는 자세를 기억해야 겠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내용 중 하나는 '유산상속'에 대한 내용이었다. 신부님께서 유산상속 시 다투지 않으려면 첫째는 배울 것. 둘째는 서로 사랑할 것이었다. 사람이 배우지 않고 부모의 재력에 기대서 생활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다툼이 일어난다는 내용은 재미있었다. 역시 사람은 배워서 자립해야 한다. 이 책에는 유산상속으로 다투게 되는 경우를 꽤 여러가지를 들어서 이야기해주시는데, 하다못해 부모님의 유품가지고도 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알게된 것은 매우 의미가 있었다.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형제자매의 관계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에 대한 요약본을 읽은 느낌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느낀 점은 단순히 형제자매의 관계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작게는 형제자매부터, 넓게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언제든, 우애에 대한 고민이 생길 때, 동생들과의 트러블이 있거나 할 때 펼쳐볼 수 있는 책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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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해결사 깜냥 1 -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 고양이 해결사 깜냥 1
홍민정 지음, 김재희 그림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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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 수상작에, '고양이'가 주인공인 책이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 지 기대하며 첫 장을 펼쳤고,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에는 이 다음 편에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독자를 만날 지 궁금해졌다. 이 책의 매력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크게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재미있다

우선, 재미있다. 아파트라는 친숙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경비원 아저씨, 택배아저씨, 층간소음 부분은 아파트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을 만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어느 덧 우리 삶에 자리잡은 길냥이도 아파트에 한 두 마리쯤은 있다. 길냥이를 좋아하는 주민과 싫어하는 주민의 갈등, 모두 가능한 이야기이다.



살아있는 캐릭터

고양이는 도도하다. 주인에게 먼저 요구하기보다 거만한 자세로, 주인을 '집사'다루듯 하는데 이 캐릭터에는 그 점이 잘 반영되어 있다. 특히 말투와 행동이 고양이답다!

하필 고양이 그림책이라니. 깜냥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 그래서 슬그머니 바닥으로 내려가 책에 오른쪽 앞발을 턱 얹었어.

"원래 책 같은 건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좀 봐도 될까? 고양이를 어떻게 그렸는 지 궁금해서 말이야."

p.19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층간소음' 에피소드다. 사실 층간소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이 에피소드 자체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 이야기에 나오는 여자아이의 캐릭터가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층간소음을 당당하게(?) 유발하는 캐릭터라면 이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아랫집에서 시끄럽다고 경비실로 연락했어. 그러니까 좀 조용히 해 줘. 알았지?"

깜냥은 아이가 알았다고 대답하면 그대로 경비실로 돌아가려고 했어. 그런데 아이가 뭐라는 줄 알아?

"안 돼! 내일 춤 동아리 오디션 있어서 연습해야 한단 말이야. 미안하지만 좀 참아 달라고 대신 말해 줄래?"

아이는 이렇게 말하고 문을 쾅 닫았어.

p.29

자연스러운 사건 전개

택배 아저씨와 함께 택배를 배달하다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주민을 만나 언쟁이 오가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아파트에서 있을 수 있는 갈등을 사건 전개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읽기가 편했다.

아파트의 민원접수가 집중되고, 주민들과의 접촉이 높은 경비실의 특성을 십분 잘 활용하여 다양한 에피소드를 녹여낸 점이 돋보였다.

다음 편이 기대되는 작품

주인공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라 다음 시리즈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말미에 등장한 깜냥의 화수분 가방! 끊임없이 나오는 그 가방에 숨겨진 이야기들도 함께 풀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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