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일 일상을 철학 하는 매거진 <뉴필로소퍼> 일상을 철학 한다는 문구가 인상적이었고, 이 잡지를 알기 전에 철학 만화책 하나를 독파해서 철학에 호기심이 생기던 차였습니다.
도착한 뉴필로소퍼! 표지가 부들부들한 종이 느낌이라 촉감이 참 좋았어요. 비닐로 포장되지 않은, 종이 느낌의 표지. 표지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잡지였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호주에서 만든 잡지를 바다출판사에서 한국판으로 내는 것 같았어요. 우리나라만 해도 수십가지의 잡지가 있는데 이 잡지를 찾아낸 바다출판사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잡지를 읽어보니 한 가지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는 잡지였습니다. '변화'를 주제로 다양한 글이 실려 있었어요. 글이 어렵지 않아서 안도했지요. 이 잡지에 실린 글 중에서 나이젤 워버튼의 <예기치 못한 변화를 대비하는 자세>와 고전 읽기 코너의 <마음이 변하다>, 그림형제의 글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자는 비유가 너무 웃겨서, 후자는 불륜의 비극이 나와서 재미있었어요.
나이젤 워버튼은 <예기치 못한 변화를 대비하는 자세> 에서 예기치 못한 변화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상황을 빨리 인지해서 우리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것 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이 글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외계인 비유 때문이었어요.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해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지구의 환경은 10년 안에 재앙의 임계점을 넘어설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 대부분에게 이것은 예기치 못한 변화가 아니다. 이미 멈출 수 없어 보이는 어떤 사태가 예상보다 조금 빠르게 진행된 것뿐이다. 그러나 다섯 개의 팔과 녹색 피부, 엄청난 지적능력을 지닌 외계인 무리가 다른 은하계로부터 날아와서 인간 고기의 맛에 푹 빠지고, 한때 소를 키우던 축사에서 인간을 키우고, 인간 햄을 올린 토스트를 즐기게 된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에 찾아온 예기치 못한 변화가 될 것이다. p.29
창의적인 비유여서 기억에 남았네요. 우리가 외계인의 토스트의 토핑이 될 가능성은 적지만 혹시 모르죠.
만약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외계인에게 들키면 안된다는 것을 빨리 깨닫고 지하로 들어가던지 해야될 겁니다. 이처럼 확률이 낮은 변화는 미지의 세계이고, 이건 진짜 두려운 상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코로나19 사태처럼요.
그림형제의 <뱀이 가져온 잎사귀>는 공주의 변덕이 불러온 비극 이야기예요. 그림형제의 동화는 예전에 읽어봤지만 이 내용은 처음 보는 거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 가난한 젊은이가 전쟁터로 나가 공을 세워서 왕국 군대의 제 1 대대장이 됩니다. 왕은 이 젊은이를 공주와 결혼시키려고 하는데, 이 공주가 결혼 조건으로 내건 게, '내가 죽을 경우 산 채로 같이 묻힐 사람'을 신랑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거였어요. 남편이 먼저 죽으면 자기도 산 채로 뭍히겠다고 하면서요.(과연?) 이 가난한 젊은이, 공주를 보자마자 반해버려서 앞뒤 안 재고 공주의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한동안 잘 살았는데, 공주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죽었어요. 젊은이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왕의 군대에 의해 결국 공주의 관과 함께 지하 납골당에 갇힙니다. 그런데 납골당 구석에서 뱀이 나와 공주의 시신 쪽으로 다가가는 거예요. 젊은이는 이 뱀을 죽입니다. 다른 뱀이 나와서 뱀이 죽은 걸 보더니 나뭇잎을 가져와서 놓아줍니다. 그랬더니 죽은 뱀이 다시 되살아납니다! 젊은이는 이 나뭇잎으로 공주를 되살려요. 왕은 크게 기뻐했지요. 젊은이는 이 나뭇잎을 부하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니 잘 보관하라고 신신당부하며 맡깁니다. 한편 공주는 되살아난 이후, 젊은이에 대한 사랑이 식은 걸 느낍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젊은이는 연로한 아버지를 뵈러 공주와 함께 배를 탔는데, 공주가 선장과 눈이 맞아버렸습니다(!) 선장과 공모해서 젊은이를 바다에 던져버려요. 이를 보고 있던 부하가 젊은이의 시신을 수습해서 나뭇잎으로 되살리고 다시 왕국으로 돌아갑니다. 공주보다 먼저 도착한 젊은이는 왕에게 공주의 부정을 고하지요. 젊은이는 숨고, 뒤이어 도착한 공주에게 왕이 젊은이의 행방을 묻자 아파서 죽었어요...라고 합니다. 왕은 크게 분노하며 공주를 꾸짖고 선장과 공주를 구멍 뚫린 배에 태워 바다로 보내버립니다.
공주가 젊은이에 대한 마음이 변한 댓가로 치른 건 죽음이었죠. 읽으면서 현실이라면 왕은 젊은이를 죽이고 공주랑 선장을 결혼시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네요. 아니면 왕이 저런 벌을 내린 건, 아마 젊은이가 신하들이 많은 곳에서 사실을 말하는 바람에 왕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저런 식으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거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ㅎㅎ
이 잡지에서 또 재밌었던 코너는 건 명언 모음 페이지나 변화 관련 어휘들을 모은 페이지였어요. 변화라는 주제를 글로도 풀어내고, 어휘로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재미있는 코너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잡지에 나온 존 로크의 말로 리뷰를 마무리할께요. 변화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생각해보고픈 분들이라면 이 잡지를 추천합니다!
새로운 의견은 다른 이유가 없어도 단지 그것이 이미 보편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의심받고 종종 거부당한다
- 존 로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