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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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통의 작품을 부러 찾아 읽었다. 그녀만의 독특한 재기발랄함과 신선한 소재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 작품은 조용한 나날을 보내온 지나치게 행복한 어느 노부부의 삶에 어느날 갑자기 침입해온 이웃사람의 무례한 행동을 참아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내면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노통은 이렇게 다소 엉뚱하다고 생각되는 얘기에 황당한 에피스드들을 엿붙여 소설을 만든다. 그러나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진지하다. 노통은 아마도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법과 그 사이에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알게된다는 사실에 항상 주목하는 듯 하다. 특히나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고, 무례한 이들을 등장시켜 그들에게 분노하는 나와 예의를 다하기 위해 그들을 참아내는 나의 갈등을 드러낸다. 그리고 점차 상대방을 이해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의 모습도 수용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오후 네시만 되면 찾아오는 침입자. 우리 삶에도 이런 무례한 사람들을 항상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대하면 될까? 나를 분노케하는 사람들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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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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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이라는 아멜리 노통의 소설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단숨에 읽어치운 후 이 책을 집어들었다.

우선은 <두려움과 떨림>이 주었던 신선한 충격은 받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 이런 소재에 대해 내가 별로 끌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난데 없는, 약간 당황스러운 만남, 연극 대본을 연상시킬 정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 그러나 결국 그들의 만남은 어느덧 필연이 되고, 한 남자가 자신의 내면과 대화한 꼴이 된다.

다소간 억지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적지 않으나, 이 소설 역시 노통다운 발찍한 생각을 많이 엿볼 수 있어서 이런 저런 화두들에 생각해보는데 도움이 되었다. 결국 나 자신의 적은 바로 나라는 것. 가장 악한 면을 다른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도록 숨기고 살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만은 속일 수 없다는 것. 이 소설의 묘미는 이런 단순해보이는 주제를 부각시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그려냈다는 데 가치가 있다. 노통이 오히려 한가지 주제가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얘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도 매력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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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성취하는 길, 개정판
오스 기니스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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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P에서 나온 이 책은 지극히 IVF다운 책이다. 신앙과 현실의 문제를 주 이슈로 하는 IVP의 다른 책들처럼, 이 책도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어떤 한 답을 기대하고 있다. 저자에 대한 소개가 책 어디에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은 점이 가장 아쉽다. 그가 평신도 사역자인지, 전임 사역자인지도 불명확하다. 책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평신도 사역자인 것 같은데...

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쉽게 얘기하기도 하는 부르심(calling)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사를 통해 왜곡되어온 소명의 본질을 찾고, 각자의 삶에 적용할 것을 조언한다. 전반적으로 저자의 박학한 지식과 다양한 예화로 흡입력 있게 글을 진행시켜 나갔다. 꼭 한가지 주제에만 국한되었다기 보다는 한번뿐인 삶을 보다 의미있게 살고 싶어하는 수많은 추구자들에게 다소간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아쉬웠던 것은 내게 적용할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학생 때 이 책을 읽으면 아주 좋을 것 같다. 그때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찾기 전이고, 보다 포괄적으로 소명에 대해 생각해볼 때이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진로와 직업의 의미를 확인해보려는 시도는 어쩌면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엔 삶은 너무 다양하고, 저자가 그 다양한 삶 하나하나의 적용점을 찾아줄 수는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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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산다는 것 - 숨어사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기행
박영택 지음, 김홍희 사진 / 마음산책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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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박영택. 나는 이 아저씨가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로 오래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가 경기대 교수로 간 것도 신기했고, 책을 냈다는 얘기도 신기했다. 그는 여기 나오는 예술가들만큼은 아니라도 학연, 지연으로 뭉친 미술계에서 보면 이렇다하게 내놓을만한 배경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기획했던 전시는 나름대로 좋았다. 모두 다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금호에 가면 항상 새로운 전시들, 새로운 작가를 만날 수 있었고, 가끔 아주 맘에 드는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를 통해 그가 금호에 있으면서 만났던,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빗나갔는데, 그는 의외로 그저 주류 미술계에 제대로 끼지 못하는, 혹은 대도시에 살지 않고 미술계와 교류 없이 시골에서 홀로 고독을 씹으며 작업하는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가난하지만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우는 이들에 대한 경외를 드러내려는 것일까? 사뭇 그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난 한편으로 이 책이 외롭고 가난하게 살다갔지만, 예술혼만은 살아남아 천재로 인정받은 고호 같은 예술가상에 한겹의 환상을 더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는 그런 의도로 이 책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읽는 이들은 이 책을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새삼 유명해지는 작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평론가와 미술가의 관계는 미묘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저자가 이후에 그의 선호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평론집을 내길 바란다. 이 책은 아무래도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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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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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라는 작가는 참 특이하다. 그는 작가적 소명을 받아 근엄하고 엄숙하게 글쓰기를 고집하는 다른 작가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글을 어찌보면 가벼워 보이지만 감각적이면서도 구성의 탄탄함을 놓치지 않는다. 현실이라기보다는 가상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듯한 느낌, 그런 느낌이 이전 소설들과 달라 곤혹스러워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의 소설이 만들어내는 상상력들이 무척 맘에 들고 그것에 매혹된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클림트의 <유디트>에 이어 들라크루와의 <사르다나팔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그의 소설 코드는 내가 바라던 글쓰기의 일종이다. 소설과 그림의 상상력이 결합되는 것. 그것은 상상력을 증폭시키고 새로운 기표를 만들어낸다. 그가 선택한 그림은 모두 죽음과 관련되며, 그가 이 소설에서 얘기하는 죽음의 다양한 표정을 드러낸다.

그의 글이 다소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면 어떠랴? 지금은 현실과 가상이 혼동되는 시대 아닌가? 무엇이 진짜인가, 리얼한가에 왜 집착하는가? 소설은 그 본질적 속성상 '거짓말'이고, 상상과 허구의 산물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적 재미를 주는 이 책이야말로 진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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