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기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인류는 어떻게 아이를 키웠을까 - 육아의 지혜, 동서고금 일만 년의 문화사
데보라 잭슨 지음, 오숙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5월

이 책은 아이 키우기에 대해 인류학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출산과 수유, 목욕, 안아주기, 재우기 등등 아기 돌보기의 모든 측면에 대해
전 세계 곳곳의 다른 종족들이 어떻게 해왔는지를 폭넓게 알려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남편에게 계속 "정말 대단한 책이야!"를 연발하면서... ^^)
보통 육아 관련 책들은 무척 실용적이고 정보 위주라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별로 남는 게 없는데,
이 책은 아이 키우기에 대해 나로서는 무척 신선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줬다.
 
일단 이 책을 쓴 영국 여자분은 서구에서 널리 행해지는 육아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아주 갓난 아기 때부터 아기침대에서 재우는 습관을 꼭 들이려고 하는 것과
아기를 많이 안아주기보다는 혼자 놀게 하고, 유모차를 사용하는 등 항상 '분리'시켜 놓으려는 경향에 대해
이런 식으로 지속적인 '분리'를 강요하는 문화는 전세계에서 서구문화뿐이라는 것이다.
 
600페이지가 넘기 때문에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도대체 왜 그런지 잘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많아서 생각보다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가 알건 모르건 몸에 배어있는 우리의 전통문화 혹은 동양적 문화와
오랜 학습과정으로 습득된 서구의 문화와 육아의 부분에서도 혼재되어서
어떤 건 이런 식으로 하고 있고, 어떤 건 저런 식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꼭 어떤 게 더 우월하고 다른 건 아닌 그런 관계가 아니고, 그냥 취향의 문제라는 생각도 들고,
어쩌면 서구에서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고, 그래서 우리도 그래야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들도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몸에 자연스러운대로, 나와 아기가 가장 편안하게 여기는 대로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실용적이고 당장에 필요한 실제적인 도움을 원한다면 불필요한 책이겠지만,
육아에 대해 좀더 폭넓은 관점을 갖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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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수동적으로 엄마 아빠나 다른 보호자에게 부속되면 아기의 역할이 완전히 바뀐다.
관심을 한몸에 받은 위치, 모두가 환호하거나 비난하는 무대 위의 배우가 아니라 연극의 구경꾼이 되는 것이다.
아기를 끼고 다니는 부모들은 아기에게 붙어서 어르거나 법석을 떠는 일 없이 자기 생활을 계속한다....
 
전형적인 미국과 유럽 부모들의 '시청각양육'과 비교해서, 이것을 '촉각양육'이라고 하면 어떨까.
서구인들은 부지런히 아기 앞을 오락가락하면서 목소리와 눈빛을 주고받고는 다시 아기를 떼어놓는다.
그러나 끼고 다녀서 늘 모임에 참석하게 되는 아기한테는 애써 참여를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호자의 품에서 편히 쉬게 해준다. 아기가 받을 구강 및 시각적 자극은 훨씬 덜하지만
아기는 곧바로 위안을 얻고, 자기 세상을 3차원 영상으로 평화롭게 감상할 수 있다.(p.199~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