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한창 유행했던 7~8년 전, 나는 괜시리 이 책을 거부했다. 그냥 그때 하루키는 우울과 침체의 대명사처럼 느껴졌고, 이 책을 읽은 수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자살했다는 소문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나는 젊음 그 자체로 혼란스러웠고, 더 이상의 침체와 우울은 원하지 않았다. 그것도 겨우 한 권의 책으로 말이다. 많은 세월이 흘러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이 책은 나의 예상보다 훨씬 더 훌륭했다. 더이상 단순한 자살에 관한 책이라거나, 알 수 없는 침체의 나락으로 빠뜨릴 류의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루키의 감성은 일본인의 것이라기 보다는 미국 문화이 영향 아래 있는 것 같다. 우리의 80년대 학번이 겪었을 정치적, 사회적 혼란과 저항을 하루키 세대가 겪었다. 옳다고 믿어야 하는 대의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고, 믿고 의지할 만한 기성세대가 없다는 인식 속에 오직 자신이 느끼고 경험하는 일상 속에 소박한 진실을 찾아가는 매우 사소한 삶. 그렇게 파편화된 삶을 하루키 이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다. 그를 발견한 것은 내게 행운이다. 나는 가끔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하루키의 말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