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몰두했다. 16세 때에는 이미 이학(理學)을 좋아했으며, 17세 때에는 지금의 학생 여러분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뒤에 사현도의 <논어해>를 읽고 크게 감격하여 숙독했다. 우선 붉은 연필로 해석이 뛰어난 곳에 줄을 긋고 그 부분을 더욱 숙독하여 잘 음미하여보면 붉은 줄이 쳐진 부분이 몹시 번잡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다시 붉은 줄 가운데에서 더욱 중요한 부분에 검은 줄을 긋고 그곳을 더욱 숙독하여 음미했다. 또 한층 더 숙독하여 검은 줄 가운데에서 정수가 되는 부분을  떼어내어 푸른 줄을 긋고 그 다음에는 또다시 그 푸른 줄의 정수의 또 정수를 추출했다. 여기까지 오면 얻을 것이 매우 적어져 단지 한두 구절만이 문제가 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리하여 하룻밤 이 한두 구절에 마음을 집중시켜 완미하면 가슴 속이 저절로 시원해졌다.
                                                                                                           
<인간주자> 35쪽에서

주자가 만년에 자신의 곁을 떠나 귀향하는 석홍경이라는 제자에게 술회한 글이다. 주자가 개발한 독특한 독서법을 말하고 있다. 이른바 박(博)에서 약(約)으로 증류시켜가는 주자의 학문자세가 나타나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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