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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호텔 ㅣ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2
브렌다 기버슨 지음, 이명희 옮김, 미간로이드 그림 / 마루벌 / 199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선인장은 우리에게 낯익은 식물이 아니다. 예전에는 선인장을 키우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참 보기가 어렵다. 왜 그럴까? 도시 생활을 하다보니까 집에 키우는 식물은 상당부분 건강을 위해서 키우는 경우가 많더라. 광합성 작용을 하는 중에 수분과 산소를 방출하고 그래서 집안의 공기와 습도가 좋아지는 기능을 하게 된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내 관찰이 턱없이 좁을 수도 있다. 어쨌든 예전에는 시골의 집집마다 있는 자그만 화단에 선인장 하나씩은 다 있었던 것 같다. 이것도 내 착각일 수 있다.
<선인장 호텔>의 선인장은 미국 애리조나 주 남부의 소노란 사막과 멕시코 북부에서만 자라는 사구아로 선인장이다. 다 자라면 어른 키의 열배 정도(15-20미터 정도)까지 되고, 수명은 200년 가까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선인장의 어린시절을 살펴보면 참 재미있다. 쥐 수염에 붙어있다가 떨어질 정도로 크기가 작은 씨앗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싹이 트서 자라면 10년이 지나도 겨우 어른 손 한뼘 정도 크기에 불과하다고 한다. 25년이 지나면 다섯살 어린이 키만해진다. 오십년이 지나면 엄마 키 두배만큼 자라고 드디어 하얗고 노란 꽃을 피우게 된다. 그 때부터 피는 꽃은 한해에 딱 하룻밤만 핀다. 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달리는데 그것이 너무 맛있어서 사막의 온갖 동물들이 군침을 흘린다. 그 지방에 사는 파파고 인디언들도 그 열매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키가 3미터 이상 자라면 드디어 그 곳에 온갖 동물들이 집을 짓기 시작한다. 딱따구리, 흰줄 비둘기, 난쟁이 올빼미, 박쥐, 곤충들, 사막쥐도 이곳을 삶의 거처로 삼는다. 그래서 '선인장 호텔'이다. 다자란 선인장은 키가 어른 키의 10배 정도, 몸무게는 8톤 정도 된다. 이 정도면 거의 고래 수준이다.
이 책의 내용을 글로 옮기면 기껏해야 A4용지 한장도 안 될 것이다. 내용도 그렇게 흥미를 끌지는 않는다.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무슨 대단한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잖는가. 그런데 그림이 기막히다. 그림과 글이 잘 어울려서 감동을 준다. 이게 그림책의 묘미다. 선인장에 붙어 사는 다양한 동물들을 선인장과 함께 그려놓으면 선인장은 손자 손녀가 50명쯤은 되는 할머니 같다. 오래된 나무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동을 똑같이 느끼게 된다. 더구나 선인장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산과 하늘의 파랑과 보라색이 뒤섞인 빛깔과 평원의 흙빛깔이 참 잘 어울린다. 선명한 대비가 느껴지기도 한다. 동물들이 싸우지 않고 그렇게 잘 어울려 살 것 같다. 개미에서 사막쥐, 방울뱀, 토끼, 여우, 늑대에 이르기까지 사막에 몸붙여 사는 동물들은 이 선인장 덕택에 그나마 평안한 삶을 누리는 것 같다. 시아구로 선인장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늙어 죽어서도 덕이 사라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