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비룡소의 그림동화 5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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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을 꼽으라면 나는 버닝햄의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를 꼽는다.  무엇이 나를 이 책으로 끄는 것일까? 여섯 살 때 처음 했던 기차여행-삼천포에서 부산으로-의 생생한 기억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표지에 나오는 그림처럼, 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를 건너가는 기차의 모습이 지금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덜컹덜컹하면서 지나가던 철교와 아래로 내려다보이던 새파란 강물이며, 새하얀 모래사장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연하다. 그 때 내 옆에는 중절모를 눌러쓴 외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부산에 계시던 큰 외삼촌 댁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이 그림책을 볼 때마다 우스운 것이 기차의 승객들인 꼬맹이와 강아지를 비롯한 동물들이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하고 큰 소리치는 장면이다. 얼마 전에 "제발, 나도 기차에 태워 줘. 자꾸 이러다간 우리 000들은 살아남지 못할 거야"하고 애원하던 녀석들이 너무도 당당하게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하고 주인행세를 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안개가 끼어서, 날씨가 더워서, 바람이 많이 불어서, 비가 와서, 눈이 와서 한번씩 기차를 세워 놓고 신나게 놀다가 보면 어느새 동물들은 기차의 주인이 되어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은 튀어 나올 것처럼 하고, 손가락이나 부리, 긴코를 쭉 뻗으면서 "내려"하는 동물들의 모습이 참 기막히다. 문득 버닝햄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질 정도다. 참 재미난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내려"하다가도 "자꾸 이러다간 우리 000들은 살아남지 못할 거야"하고 애원하는 동물의 말을 주의깊게 경청하는 모습은 참 숭고해보인다. 도대체 어디에 저렇게 잘 들어주고 상대의 처지에 공감하는 존재들이 있단 말인가. 물개나 강아지,꼬마, 코끼리,호랑이,두루미가 모두 차렷자세로 들어주고 있다. 또 자기 처지를 설명하는 동물들의 자세는 얼마나 설득력있는 모습인지. 기차에 올라탈 때 호랑이와 자기 처지를 설명하는 호랑이, 내리라고 큰소리치는 호랑이, 공감하며 들어주는 호랑이는 제 각각 다른 모습들이다.

 

기차에 타기 전의 모습들은 모두들 지치고 힘든 표정들이다. 그만 놀고 자라는 엄마의 말을 들을 때의 아이 표정을 보라. 얼마나 뜨악해하는 표정인지. 거실 방석 밑에 구겨져 있던 강아지 잠옷집은 또 얼마나 축 쳐져있는지. 이 기차에 타고 있는 모든 존재들은 서로의 처지를 마음으로 공감하는 이들이다. 기차를 타는 순간의 코끼리, 물개, 두루미, 호랑이, 북극곰은 긴급구조를 요청하는 모습들이다. 마치 사람들에게 쫒기다 금방 기차에 올라탄 것처럼 다급한 모습들이다. 기차는 이들에게 죽음과 멸종의 위협을 막아주는 보호막이다.

 

버닝햄은 이 책을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지키려 애썼던 치코 멘데스에게' 바친다고 했다. 아마존 열대우림은 지구의 생태적 가치를 상징한다. 치코 멘데스는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이들에 맞서 싸우다가 피살되었다. 바로 이 코끼리와 물개들이 바로 아마존이며 치코 멘데스다.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지구의 미래를 위해서 보존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치코 멘데스가 누구며, 아마존 열대우림이 무엇인지 묻는 아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탐욕이 파괴하는 자연과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하는 이들의 삶에 대해서, 또 우리 삶의 어느 부분이 그런 탐욕에 기반하고 있는지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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