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 김원봉 역사 인물 찾기 18
이원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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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은 예로부터 선비와 의병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에 이름을 떨친 이로는 유가의 김종직, 불가의 사명대사가 있다. 그 맥은 끊이지 않아서 일제에 국권을 강탈당한 시기와 전체주의 정권 시절에도 많은 투사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약산 김원봉은 특출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불세출의 독립투사였지만 해방 이후에 월북하여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고 국가검열상, 노동상을 지낸 고위인사였기에 남쪽에서는 이름조차 입에 담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지용을 빼놓고서는 시문학사를 논할 수 없듯이, 독립투쟁사에서 약산을 빼버린다면 그것은 반쪽도 못되는 역사일 것이다. 우리의 과거가 그래왔다.  

약산의 삶은 한편의 독립운동사 드라마이다. 1898년에 밀양에서 태어난 뒤에 십대에 망국인이 되었고, 1919년에 약관의 나이에 의열단을 창단해서 일제에 대항하여 타협하지 않고 투쟁했다. 3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중국 땅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약산은 일본이 패망한 뒤에야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만큼 그의 삶과 투쟁은 치열했다.

1919년 11월 11일은 약산이 21살의 나이에 의열단을 창단하여 의백(단장)이 된 날이다. 이후 10여년 가까이 진행된 의열단의 각종 암살, 폭탄투척 같은 의열투쟁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다른 민족들에게는 조선민족의 기개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밀양경찰서 폭파, 부산경찰서 폭파,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 투척, 일본인 대장 암살 기도 등 수많은 사건목록이 보여주듯이 의열단의 투쟁은 그 차제가 무장독립투쟁사의 전설과 같은 것이었다. 약산은 1920년대의 빈 라덴이었다. 

약산은 의열투쟁에 머물지 않고 무장 독립군부대 창설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그 꿈은 '조선 의용대'의 창설로 이어졌고, 나중에 조선의용군이라는 무장부대로 맥을 이어갔다. 그들은 중국인과 연대하여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견결한 항일투쟁을 벌였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 독립투쟁사의 마지막은 찬란할 수 있었다.

 약산은 해방 전 중국땅에서나 해방 후 조선땅에서나 좌우합작에 충실했다. 이미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위한 '국공합작'의 진행을 보아왔던 약산이기에 독립투쟁의 좌우합작을 위해서 일관되게 노력했다. 그 결과 민족혁명당이라는 통합정당의 건설이 가능했고, 말년의 대한임시정부를 김구의 한국독립당과 함께 이끌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백범과 약산의 이 좌우통합의 경험은 해방정국에서 좌우합작,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같은 좌우통합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일관되게 좌파를 배척하는 입장에 섰던 이승만의 노선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약산이 해방 이후에 좌파운동의 통일전선체인 '민주주의 민족전선'에 가담하는 등 친좌파적인 경향으로 흐른 것을 원래 약산은 좌파였기 때문에 그랬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심지어 약산이 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하고 국가검열상, 노동상의 고위직을 거쳤기 때문에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취급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것은 곡해라고 본다. 약산은 해방이전이나 이후나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좌우통합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보고 일관되게 통합의 길을 걸어왔다. 결국 해방정국에서 약산(48년월북)이나 몽양 여운형(47년암살), 백범 김구(49년암살), 우사 김규식(50년 납북)같은 통합론자들의 실패는 곧 해방이후 우리 민족사의 비극을 잉태한 씨앗이 되었다. 약산의 실패는 이승만이나 김일성 같은 일방주의자들의 성공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약산의 최후는 숙청과 음독자살로 나온다. 지은이 이원규가 정확히 알고 쓴 것인지, 추측인지 모를 일이다. 관련 자료를 더 읽어보아야겠다. 6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 약산의 처지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남로당파, 연안파, 소련파 등 비김일성계들이 모두 숙청된 상황에서 그가 북쪽에서 건재하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약산의 삶을 실패라고 규정할 수는 없겠다. 약산은 의열단과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를 창건하고 비타협적으로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가로서, 일관되게 좌우합작노선을 걸었던 통합론자로서 치열한 평생을 살았다. 약산은 분단과 반목을 청산하고 평화와 통일의 길로 가는 우리 시대에 더욱 곱씹어 보아야 할 지도자의 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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