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로 고려를 읽다 - 가장 역동적인 역사의 순간
이한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어쩌다 고려역사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역사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매력이 있다. 500여년의 긴 역사를 가진 왕조답게 이 나라의 역사에는 숱한 사건들이 있다. 특히 매력적인 것은 외침에 대한 고려의 대응이다. 건국초부터 시작된 거란과의 갈등과 전쟁, 여진이 세운 금나라와 갈등, 몽골의 침략, 홍건적의 침입과 왜구의 노략질에 대한 대응 등 숱한 침략에 나름대로 자주적으로 응전해왔다. 문약에 빠진 조선과는 대비되는 지점이다. 어쩌면 고려는 지원국 하나 없이도 거대 군사국가인 거란과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이한우가 쓴 이 책은 <고려사>라는 역사책을 통하여 고려를 읽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한우는 조선왕조실록을 다 읽고 조선군주열전 시리즈를 펴낸 바 있다. 역사가는 아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우파 언론인이다. 조선일보 문화부장으로 활약했다. <거대한 생애 이승만>이라는 책을 펴낸 바도 있다. 우파치고는 공부를 많이 하는 우파라고 볼 수 있다. 이한우는 조선왕조실록의 연장선에서 조선의 전사라고 할 수 있는 고려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고려사>를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려사>는 고려왕조가 쓴 책이 아니다. 조선의 건국세력이 기술한 고려의 역사다. 고려역사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이 바로 이 <고려사>에서 나왔다. 이 책은 고려왕조실록과 당대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쓴 고려사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왕조 개국이후 60여년이 지난 1451(문종1)에 완성되었지만 반포는 1454(단종2)에 되었다. 사마천의 사기를 따른 기전체 사서로서 세가 46, 39, 연포 2, 열전 50, 목록 2권으로 이루어진 총 139권의 책이다.(여기서 권이란 오늘날로 말하면 부라고 보면 된다.) 편집 책임자는 김종서였지만 김종서가 1453년에 일어난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제거되어서 인쇄본에서는 정인지가 책임자로 나와있다. 김종서는 1452년에 <고려사>를 핵심요약한 <고려사절요>를 펴냈다. <고려사절요>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따른 편년체 역사서다. 고려사를 시대별로 쭉 훍어볼 수 있는 통사류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고려사>는 북한에서 번역한 책이 신서원에서 11권짜리로 나와있다. <고려사절요>는 역시 신서원에서 3권짜리로 번역되어있다. 한번 마음먹고 읽으면 한 달 정도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싫으면 이한우의 책이나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같은 책을 보면 된다.

 

고려사는 선대인 통일신라와 후대인 조선과 비교해보면 그 특징을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고려시대는 중국본토가 혼란기였다는 점을 모르면 그 역동성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중국은 당나라의 멸망(907) 이후 유목민족인 거란, 여진, 몽골이 연이어 대제국을 건설하고 한족을 양쯔강 이남으로 몰아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송나라는 군사력이 약한 국가로서 천하의 정치군사적인 중심이 될 수 없었다. 결국 송나라는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면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루게 된다. 송나라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신유학은 이후 동아시아 몇 백년을 틀지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유목민족의 흥기는 동시에 그들만의 문자를 발명하게 하고, 그것이 조선에도 영향을 미쳐서 새로운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고려는 이 역동적인 시기에 자신의 독자성을 지키면서 북방의 민족들과 투쟁하기도 하고 협상하기도 하면서 역사를 만들어낸다.

 

조선은 중국에서 몽골이 망하고 명나라가 설립된 시기에 건국된다. 명나라는 250여년 만에 망하고 여진족에게 정복된다. 이 시기에 우리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호된 사건을 겪는다.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되는 시기는 순식간이었다. 여진족은 금나라 때도 그랬지만 청나라 때도 일어나는 속도는 정말 순식간이었다. 명나라는 한순간에 썩어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청나라는 중국을 확고부동하게 장악하고 300여년을 통치한다. 명청교체기가 짧은 시기 안에 일어난 점을 감안한다면 중국은 명청조 시대 500년 가까이를 평화롭게 보낸 셈이다. 더불어 조선은 전반기를 평화 속에 보내고 중간에 5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같은 호된 전쟁을 겪는다. 그러나 조선의 지배층인 신유학자들은 이 사건들을 이겨내지를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성리학을 중국본토의 성리학자들보다도 더 깊이 내면화한 이 지배계급은 자신의 나라조차 지킬 힘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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