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 밀레니엄 프로파일 1
로버트 서비스 지음, 정승현 외 옮김 / 시학사 / 2001년 9월
평점 :
품절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라는 존 리드의 책 제목처럼 1917년의 10월 혁명은 세계를 뒤흔들었다. 역사의 지축이 흔들렸다. 1917년 2월혁명으로 집권한 케렌스키의 임시정부는 평화에 대한 인민들의 열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전쟁은 계속되었다. 토지에 대한 농민의 요구도 무시되었다. 레닌이 이끈 볼세비키당은 임시정부를 무너뜨린 10월 혁명 이후에 즉각적인 전쟁중지를 선언했다. 토지는 농민의 것이라고 선언했다. 러시아 제국 내에 존재하는 소수민족의 권리를 억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조치들은 당대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엄청난 도전이었다.

 

19세기 세계체제는 1차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무너졌다. 20세기는 레닌이 만든 공산주의 국가 소련과 1차대전의 피해를 겪지 않은 거대한 자본주의 국가 미국이 세계를 이끌고 간 시대였다. 1991년 소련이 스스로 붕괴하면서 20세기의 승자는 미국이 이끄는 자본주의세계체제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자본주의는 무소불위처럼 보였다. 그리고 21세기는 시작되었다. 2001년 9.11 테레와 함께. 미국은 한낱 테러집단에게 자신의 심장부인 뉴욕을 털렸다.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이라크침공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역시 미국의 승리. 그러나 역사는 늘 댓가를 요구한다. 미국은 2008년에 1929년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를 겪었다. 세계경제는 요동쳤다. 이후에 미국은 전대미문의 달러를 찍어내서 전세계에 풀어댔다. 그렇게 자신의 경제위기를 나머지 세계에 전가하고 자신은 겨우겨우 살아남았다. 이후 세계역사는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

 

이 책은 이론 속의 사회주의를 현실 속에 최초로 구현한 소비에트연방을 만든 혁명가 레닌의 삶을 다룬 전기다. 러시아 전문 역사학자인 로버트 서비스는 러시아혁명사의 3대 거두인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의 전기를 모두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그 시리즈 중에서 첫번째로 ___년에 나왔다. 자료는 풍부하다. 그것은 서비스가 소련의 붕괴 후에 공개된 공산당의 기밀자료들을 풍부하게 참고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몰랐던 레닌이 혁명가가 되기 이전시절과 가족들, 죽기 몇 년 전 스탈린과 벌인 투쟁등을 알 수 있게 된다.

 

레닌의 아버지는 유명한 장학사였다. 사명감으로 불타는 교육계의 지도적 인사였던 그는 그 업적 때문에 나중에는 교육감이 되고, 세습귀족도 되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병마로 급사하고 만다. 큰 아들이 막 대학에 진학하던 무렵이다. 이 공백은 그의 가족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의대에 진학한 큰 아들 알렉산드르는 나로드니키 테레리스트들의 조직에 들어가고 황제를 폭살시키려는 음모에 가담한다. 음모는 사전에 발각되고 관련자들은 체포된다. 그리고 레닌이 그토록 흠모하던 형은 너무도 젊은 나이에 사형당하고 만다. 이것이 레닌의 삶과 그의 가족들에게 미친 영향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레닌의 가족들은 지역사회에서 하루 아침에 반역자의 집안으로 낙인찍히고 배제된다. 그들은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된다. 이후 레닌은 형이 남겨둔 책들을 열심히 읽게 되고, 체르니셉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는 그가 추구해야 할 삶의 전형을 발견한다.

 

20대의 레닌은 혁명가가 되기 위해서 자신을 치열한 연구와 실천에 몰아붙인다. 10여년의 연구와 조사, 유형지에서도 계속된 작업 끝에 그는 당대 러시아의 맑스주의자들 중에 일급이론가로 대접받게 된다. 그리고 혁명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해외로 나간다. 그곳에서 러시아 맑스주의의 지도자인 플레하노프와 '노동해방'그룹을 만나게 되고,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을 재건할 정밀한 계획을 짜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온 책이 그 유명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이 책에는 불굴의 규율에 의해서 인도되는 직업혁명가들의 조직과 전국적 정치신문에 대한 구상들이 들어있다.

 

재미난 것은 레닌이 망명생활을 하던 무렵에 그는 아내인 그룹스카야와 더불어 그의 장모도 같이 모시고 살았다는 것이었다. 또 레닌의 어머니는 레닌을 비롯하여 모두 혁명가가 된 자신의 아들과 딸들(레닌 포함 5명)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헌신한다. 레닌은 그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형제자매들에게 아버지처럼 존경받고 사랑받는 존재였다고 한다. 가족들은 아버지와 큰형이 사라진 자리에 레닌을 앉혔다. 촉망받던 인재였던 큰형의 죽음은 레닌의 가족 모두에게 제정러시아체제에 대한 증오를 하나의 가족적 이상으로 만들 수 있게 만들었다. 레닌은 가족의 기대에 맑스주의 진영의 불세출의 이론가, 조직가라는 명성으로 응답했다. 레닌은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망명생활을 한 직업혁명가였다.  

 

레닌이 러시아에 혁명을 가져오기 위해서 노력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지만 혁명가들의 노력과 무관하게 혁명은 결정적으로 체제의 위기상황인 전쟁과 더불어 찾아온다. 1905년 혁명은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신생국가 일본에 패배하면서 느슨해진 틈을 타서 일어난다. 또 1917년의 2월혁명도 1차대전에 참전한 러시아가 유럽에서 고전하는 동안 일어난 인민들의 삶의 위기가 가져온 사건이었다. 인민들은 전쟁이 가져온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그러나 유럽자본주의 열강들이 깊이 얽힌 이 전쟁에서 발을 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케렌스키가 이끈 임시정부는 결국 전쟁을 계속하기로 결정했고, 인민들의 마음은 이미 임시정부에서 떠나고 있었다. 이 상황을 꿰뚫어본 사람은 볼세비키 안에서도 레닌 밖에 없었다. 10월 혁명은 레닌이라는 전략가가 없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사건이었다. 10월 혁명은 사실상 레닌이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0월 혁명의 결과는 가혹했다. 즉각적인 전쟁중단을 선언한 러시아에게 독일은 러시아영토의 1/3을 요구했다. 더구나 그곳은 러시아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러시아의 핵심지역이었다. 마치 한쪽 다리를 잘라내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레닌은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지켜내기 위해서 독일의 요구를 들어준다. 이른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러시아는 세계대전에서 홀로 떨어져나온다. 이것은 곧 영국과 프랑스가 보복전 성격을 가진 간섭을 시도하고, 러시아 내에서 내전이 발생함으로써 러시아혁명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태로 전개된다. 10월의 봉기로 대중들은 압도적으로 볼세비키를 지지하고, 모든 문제는 쉽게 풀릴 거라고 낙관했던 볼세비키들은 무장봉기와는 규모면에서 비교할 수도 없는 거대한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이 때 식량공출, 인민의 적에 대한 탄압, 부농에 대한 몰수 같은 전시 공산주의 정책이 시행되고, 이 정책은 나중에 스탈린이 1930년대에 농업집단화를 시행할 때 참고가 되었다. 

 

내전을 승리로 마무리한 볼세비키에게 던져진 새로운 도전은 전시공산주의의 가혹한 정책을 거부하는 인민들의 저항이었다. 혁명의 선봉대였던 집단들이 오히려 반란을 선동하는 상황에서 레닌은 또 한번의 과감한 정책전환을 단행한다. 이른바 '신경제정책'(네프)을 도입하여 자본주의적 요소와 과감하게 타협한다. 생산력을 높이고 인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내린 결단이었다. 마치 1980년대 중국의 덩사오핑이 내린 개혁개방정책과 비슷한 방향전환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지만 이런 전환을 이룩한 레닌은 그가 만들어낸 사회주의 국가를 더 이상 끌고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일종의 일중독자였던 레닌도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업무가 폭주한 탓에 그의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졌던 것이다. 결국 레닌은 모스크바를 떠나 요양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일은 서기장인 스탈린에게 맡기게 된다. 그러나 레닌은 요양지에서도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관심사에서 멀어질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일에 간섭하게 된 레닌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지고, 어느 순간 일어난 급격한 발작은 몸의 한쪽을 마비시키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의 레닌을 만들어낸다.

 

한편 급속하게 자신의 영향력을 넓혀가던 스탈린의 야욕을 뒤늦게 발견한 레닌은 스탈린을 몰아내기 위한 투쟁을 힘겹게 벌인다. 레닌의 마지막 투쟁은 사실상 스탈린을 제거하고 좀 더 편협하지 않은 지도자를 볼세비키의 우두머리로 세우려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다. 그리고 이 실패는 스탈린이 이끌고 간 30년 이후의 소련사회를 전대미문의 공포정치에 의해서 통치되는 이상한 사회주의국가로 만들고 말았다. 과연 레닌이 이후 20여년간을 통치했다면 소련을 대숙청과 강제노동이 난무하는 국가로 가도록 이끌었을까? 글쎄 알 수 없는 일이다. 레닌도 민주주의자는 아니었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회주의국가론으로 제시한 것은 레닌이 10월 혁명 직전에 쓴 <국가와 혁명>이었으니까. 그래도 스탈린처럼 무자비하지는 않은 좀더 인간적인 얼굴을 한 사회주의국가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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