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김순남 나남산문선 9
김세원 지음 / 나남출판 / 1995년 4월
평점 :
품절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김순남이라는 이름에 끌려서 보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김세원씨가 김순남의 딸이었더라. 김세원이 누군가 싶어서 책날개의 안내글을 보니 문화방송에서 오랫동안 음악프로그램을 운영했다고 했다. 그래도 감이 안 잡혔는데,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바로 박찬욱의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는 000했다"하는 식의 해설을 하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란다. 김미숙이 문화방송 라디오의 진행을 하기 전에 오랫동안 그 부분을 담당했단다. 그 김세원이 바로 김순남의 딸이라고 한다니 참 놀랄 일이었다. 세상에는 놀랄 일이 참 많구나 싶었다. 사실 그보다 더 놀랄 일은 김순남이라는 불세출의 작곡가가 그토록 철저히 잊혀졌다는 사실이 놀랄 일인거지. 1988년에 월북 예술가들이 해금되기 전까지 심지어는 정지용 같은 대시인도 이름조차 입에 올리는 것이 금지된 사회였으니 말이다. 지금부터 20년도 안 되는 시절이다. 그런 시절이 우리 앞에 있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글 전체가 김세원의 일기 같은 느낌이다. 아버지의 작품이 해금되고, 그 작품을 연주하는 연주회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놀라고 하는 과정이 실시간 영상처럼 나온다. 문화방송의 특집으로 김순남의 삶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일, 만났던 사람에 대해서 가감없이 서술되어 있다. 아버지의 삶의 자취를 따라서 일본으로, 모스크바로, 중국으로, 미국으로 떠돌아다니는 딸의 모습은 눈물겹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대목은 백남준을 만난 부분이다. 백남준이 이건우나 김순남을 현재형으로 기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에 음악에 심취해서 작곡과 피아노를 배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 김순남이 좌파운동에 연관되어 수배를 받고 있을 당시여서 그에게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의 음악이 당대 최고 수준임은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김순남은 그 시대의 윤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윤이상이 살아남아서 위대한 작품을 남겼음에 비해서 김순남은 정치적 격랑에 휩쓸려 사라졌던 것이고. 백남준은 말한다. "작곡가가 나오기는 힘들죠. 귀신이 방귀 뀌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지. 나도 사실은 하다가 힘이 들어서 안 했다우. 작곡가는 5000만명 중에 하나쯤 태어난다고 힌데미트가 말했지. 천재는 영어로 말하면 단순히 '주어진' 것이지." 뭐 대충 그런 말이다. 여하튼 우리 민족은 그렇게 전쟁통에 위대한 작곡가를 꽃피울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나는 음악을 잘 모르겠지만 위대한 작곡가들의 작품은 다른 모양이지. 책을 읽으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김세원의 삶이 애잔하기도 하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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