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으나

김지하

기다렸으나
먼지낀 밤하늘에 별은 뜨지 않고
남쪽으로 가는 비행기 불빛만 지나간다

기다렸으나
꿈꾸는 나무그림자
자동차 불빛 끝에 사라지고

기다렸으나
장마가 오는데도
맹꽁이 울음소리 들리지 않고

기다렸으나
기다렸으나
밤 산책길에 흰머리 노인
오늘은 웬일로 오지 않는다

여름날 밤 아홉시
목동아파트
홀로 서서
내내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나
                                                         <화개>

김지하 시에는 음악성이 있다.  요즘 시들이 대부분 운율을 무시하는데 비해서 그이의 시들은 음악적인 요소들이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거기에 더해 깊은 회한 같은 것, 아름다움에 대한 간절한 소망 같은 것, 진리에 대한 구도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별, 나무그림자, 맹꽁이 울음소리, 흰머리 노인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내내 기다리고, 홀로 기다려도 말이다. 노래처럼 수없이 반복해서 외우다 보면 어떤 느낌이 올까. 그 상황이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기다림이 말이다. 기다린다는 것을 잃어버린 시대가 오늘 이 시대라고 하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