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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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문장의 아버지는 필사쟁이다. 인쇄술이 발달했다지만 조선에서 인쇄를 한다는 것은 대규모의 자본이 필요한 엄청난 사업이었다. 국가나 큰절, 서원이 아니면 책을 인쇄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한자를 조판하거나 목판에 새긴다는 것은 보통의 노력으로는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책이 필요한 사람은 책을 베꼈다. 영정조 연간에는 필사를 해서 만든 책을 빌려주는 사업이 성행했다. 이른바 세책(貰冊)업이다. 특히 언문소설이 유행하면서 세책업은 한양을 중심으로 해서 상당히 성행했던 것 같다.

 

이 시대는 또한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천주교도 유행했다. 서울의 양반가, 특히 야당이었던 남인의 집안 자제들 사이에 서학이 유행했다. 그러나 윤지충이 부모의 신주를 불사른 사건 이후에 서학은 사회적인 배척의 대상이 된다. 당시 가장 유명한 서학관련 책은 마테오 리치가 저술한 <천주실의>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매를 맞고 죽음에 이르게 된 사건도 <천주실의>와 연관되어 있다. <천주실의>를 필사하고 돌려보는 과정에서 발각된 서학신봉자들은 봉변을 당한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잃고 난 후에 아버지의 친구인 세책가 주인 최서쾌의 집에서 책을 배달하는 일을 맡으며 삶을 유지하게 된다. 불과 10대 초반의 나이다.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가보면 당대의 세책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게 된다. 벼슬을 하면서도 기존의 성리학적 신분질서에 회의를 느끼는 홍문관 교리 같은 사람, 기생, 양반가의 부녀등이 책을 주로 빌린다. 한문책을 빌려주기도 하지만 대세는 언문소설이다. 심청전, 광문자전, 삼국지 같은 소설들이 한양이라는 도성에서 세책가를 중심으로 해서 유통된다.

 

이야기 속에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기수라는 직업도 나온다. 전기수가 기생들의 모임에서 놀부전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마치 판소리 한마당을 하는 것같은 모양새다. 보통 전기수(이야기꾼)는 시장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책의 내용을 실감나게 들려주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는 기생과 양반집 부녀들을 모아놓고 들려주는 것으로 나온다. 박경리선생의 유고시집에 보면 선생의 어머니께서 젊은 시절에 부녀들의 모임에 불려가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박경리 선생의 어머니는 대단한 소설애독자였던 모양이다. 기억력이 좋아서 소설의 세부적인 면들을 실감나게 들려주었단다. 박경리 선생은 아마도 그런 면을 닮아서 유명한 소설가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세기 중반에 남부지방에서 그런 유행이 있었다면 아마도 19세기 초중반에는 서울에서 그런 유행이 있었음직도 하다. 아는 게 없어서 더 이야기는 못하겠다. 전기수 이야기를 다룬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라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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