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증보판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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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은 진화심리학을 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학자다. 서울대에서 최재천 교수밑에서 개미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고, 미국에서는 데이비드 버스 교수의 지도로 진화심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데이비드 버스 교수는 얼마 전에 <진화심리학>이라는 개설서를 펴낸 진화심리학계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이다. <욕망의 진화>,<이웃집 살인마>,<위험한 열정 질투>,<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같은 책을 통해서 살인,섹스,질투,욕망 등 인간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인들에 대한 해설이 담긴 책들을 썼다. 이 책들은 2015년에 내가 읽어보고 싶은 책 리스트에 담겨있는 것들이다. 전중환이 저술한 이 책은 초판이 2010년으로 나와 있다. 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진화심리학은 많이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이 책은 진화심리학을 퍼뜨리는 데 많은 기여를 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볼 때마다 감탄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오래된 연장통'이라니 얼마나 재미있는 제목인가. 그런데 빨간 용접마스크를 쓴 사람은 왜 등장시켰을까 궁금했다. 참 많은 것을 상징하는 그림 같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지그림을 자세히 읽어보니 마스크를 쓴 사람이 계속 중얼거리고 있다. pish, pish라고 하는데, 사전에 찾아보니 '흥,체'라는 뜻이다. 삽화가의 재치와 유머가 느껴진다. 본문을 넘기다보면 표지에 버금가는 재미난 삽화를 많이 만난다. 개인적으로는 삽화가 이 책을 보는 재미 중의 하나였다. 새삼 책의 제목과 표지, 삽화, 사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심리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서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는데, 그 예언은 20세기가 끝나갈 무렵에 실현되었다. 이제 진화론적 심리학은 심리학이라는 영토에 한 자리를 분명히 차지하고 있다. 심리학은 참 다양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융의 분석심리학,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피아제와 비고츠키의 발달 심리학, 최근에 각광받는 긍정심리학 등. 성격심리학이라는 분야도 있다는 것은 최근에 알았다. 심리학이 이렇게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분야의 심리학 중에서 생물학과 가장 가까운 것이 진화심리학일 것이다. 요즘 진화심리학자들은 앞으로 진화심리학은 심리학 그 자체가 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고 하는데 두고 볼 일이다.

 

책은 모두 21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진화론의 틀을 통해서 인간사회와 문화의 밑바닥을 이루는 심리 현상을 들여다본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누리고 있는 음악, 도덕, 종교, 집단주의, 이야기, 동성애, 웃음, 향신료 등의 기원과 기능에 대해서 진화론적인 방식으로 분석을 하고 해설한다해설이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하고, 미흡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해 안 되는 대목도 많았다. 책 내용 중에서 내가 눈여겨 본 것은 두 가지다.

 

먼저, 도덕본능에 대한 것이다. 언어가 인간의 보편적인 본능이듯이 도덕도 인간이 본능 속에 내재한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이 내리는 결론이다. 인간은 도덕성을 발달시킴으로써 자연 속에서 더 훌륭하게 적응했다고 한다. 도덕 본능은 도덕적 정서(분노, 감사, 죄책감, 동정)에 의해서 작동하는 도덕적 직관과 합리적 이성에 의해 결론에 도달하는 도덕적 추론으로 나뉜다. 책에서 예로 드는 이야기가 있다. 생닭을 집에 가지고 와서 닭을 요리해 먹기 전에 통닭과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그 뒤에 통닭을 맛있게 요리해 먹는다. 이 사람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용납이 되는가? 우리의 도덕적 직관은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이성에 의한 도덕적 추론에 의하면 이상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가 동물을 죽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므로. 그러나 인간의 직관은 추론에 우선한다. 이것은 오랜 세월의 진화과정에서 인간이 터득한 것이다. 그렇지만 인류사회의 도덕은 문화권마다 똑같지는 않고 약간씩 다르게 진화했다. 도덕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는 도덕성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를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타인의 곤경을 돌보며 남을 함부로 해치지 않음. 정의. 자기집단에 대한 충성. 권위에 대한 존경. 신성과 순결을 떠받듦서유럽사회는 ,를 주로 강조하는 반면 비유럽사회는 다섯 가지 요소를 골고루 나타내는 편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종교는 왜 존재하는가이다. 진화론에 의하면, 자연선택은 어떤 기능을 수행하게끔 정교하게 설계된 적응과 거기에 부수적으로 연결된 부산물을 가져온다고 한다. 탯줄이 적응이라면 배꼽은 적응의 부산물이다. 종교활동만을 위한 뇌부위가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종교현상은 적응이라기보다는 적응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행위자 탐지가설과 민간심리 가설을 가지고 종교현상을 설명하려고 한다. 행위자탐지 가설이란 이렇다. 자연에서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일단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피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호랑이가 나타난 것으로 가정하고, 컴컴한 곳에 있는 식별되지 않는 물체를 살아 움직이는 포식자로 믿어버리는 것이 생존에 도움을 준다. 그렇게 해서 그 심리가 발전해서 종교적인 믿음까지 생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민간심리가설은 타인의 행동에서 타인의 마음을 유추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그렇게 유추하는 마음이 발전해서 신이나 요정, 영혼 같은 것을 인간이 믿게 되었다는 식이다. 본문에서는 해설이 간략해서 약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진화심리학은 처음 접하는 분야라서 읽을 때는 아하하고 무릎을 치지만, 읽고 나서 내용을 요약하고 해설하라고 하면 난감하다. 이 책에 대한 내 이해도는 60점 정도 될까? 비슷한 유형의 책들을 대여섯 권 더 보고 나면 익숙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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