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의 진화 -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들려주는 성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1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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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기니 고원에 사는 남자들은 팔로카프(phallocarp)라고 부르는 덮개로 음경을 가리고 다닌다.  칼집 비슷하게 생겼는데, 길이가 60cm, 지름은 10cm 정도이다. 문명국가에서 남자들이 넥타이를 매고 다니듯이, 이들은 다양한 색깔의 팔로카프를 구비해놓고 상황에 맞는 종류를 골라서 차고 다닌다. 그들은 팔로카프를 차지 않으면 벌거벗은 느낌이 들고 예의에 벗어난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이들은 그 밖에는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는다. 세상에 별일도 다 있구나 싶지만, 이것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은 남자들이 음경을 최대한 확대한다면 어느 정도 크기까지 키우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다. 인간 수컷의 음경은 다른 유인원들에 비하면 상당히 큰 편이다. 고릴라는 3cm, 오랑우탄이 4cm, 인간이 13cm다. 덩치에 비한다면 지나치게 큰 편이다. 왜 이렇게 큰 것일까? 남자들은 음경의 크기에 집착이 강하다. 왜일까? 인간암컷이 음경을 중요한 신체기관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조사에 의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을 숫사슴의 뿔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본다. 동성의 경쟁자에 대한 우위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이런 종류의 재미난 이야기들이 넘치도록 많이 나온다. 책은 진화생물학의 시각으로 인간의 성행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다양한 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91년작인 저자의 <제3의 침팬지>의 2부 '이상한 라이프사이클을 가진 동물'에서 다룬 내용과 상당 부분 겹치지만, 더 깊이있는 분석이 들어있다. 이 책은 영국의 오리온 출판사에서 나온 '사이언스 마스터스'시리즈의 한 권으로 나왔다. 문고판보다 조금 큰 크기에 분량은 280쪽 정도 되는 정도에 불과하다. 내용은 모두 7장으로 이루어져있다. 1장 '가장 특이한 성생활을 즐기는 동물'에서는 인간의 성생활이 다른 동물들, 특히 포유류와 얼마나 다른 점이 많은가를 다루고 있다. 2장 '성의 전쟁'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자식을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벌이는 온갖 투쟁이 생겨난 이유를 다룬다. 3장 '왜 남자는 젖을 먹이지 않을까?'에서는 남자도 젖을 먹일 수 있는 세상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 머리가 띵해진다. <제3의 침팬지>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던 내용이라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4장 '사랑해서는 안 될 때'에서는 여자인간의 '감추어진 배란'이 생겨난 사연을 다룬다. 5장 '남자는 대체 무슨 쓸모가 있을까'에서는 남자의 사냥행동, 혹은 그에 준하는 행위의 실제 이유를 찾아본다. 6장 '폐경의 진화론'에는 인간여성이 폐경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진화적인 이유가 분석되어 있다. 7장 '섹스어필의 진실'에서는 인간육체의 성적장식물인 남성의 근육과 음경, 여성의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가 형성된 진화적 이유를 담고 있다.  

조류생태학자인 저자는 새와 인간을 참 많이 비교해서 이야기한다. 특이하게도 인간은 포유류보다는 조류와 닮은 성행동을 보인다. 그것은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를 꾸미다보니 새와 비슷한 성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끊임없이 혼외정사를 통해서 자신의 유전자를 더 퍼뜨리려는 전략을 쓴다. 인간과 가장 비슷한 조류로 들고 있는 것이 알락딱새다. 알락딱새 수컷은 먼저 둥지를 틀 나무구멍을 구한 뒤에 암컷에게 구애를 한다. 구애에 성공하면 암컷과 교미를 하고, 암컷은 둥지에 알을 낳는다. 수컷은 암컷이 임신하고 알을 낳은 뒤에는 알을 품느라 다른 수컷에게 관심을 돌릴 수 없을 거라는 데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 동안에 수컷은 근처에 있는 다른 나무 구멍을 찾아낸 뒤에 또다른 암컷에게 구애를 한다. 그러면 이 암컷은 둘째부인이 되는 셈이다. 둘째부인이 알을 낳을 무렵이면 첫째부인이 낳은 알들에서 새끼가 나오게 된다. 그러면 수컷은 부지런히 자식을 키우기 위해 먹이를 물어다 준다. 그리고 둘째부인이 낳은 새끼에게는 신경을 덜 쓰게 되거나 무심하게 된다. 수컷은 첫째부인이 낳은 자식에게는 1시간에 14번 먹이를 물어다주고, 둘째부인이 낳은 자식에게는 1시간에 7번 물어다준다. 이건 인간세상과는 반대현상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둘째부인이 고생한다. 첫째부인은 자기 새끼를 위해서 1시간에 13번 먹이를 나른다. 둘째부인은 20번 먹이를 나른다. 둘째부인은 고생이 심해서 일찍 죽기도 한다. 첫째부인과 둘째부인의 자식이 생존하는 비율은 5.4마리 : 3.4마리 정도이고, 둘째부인의 자식들이 덩치도 더 작게 된다. 둘째부인은 이런 결과를 알고도 수컷에게 넘어가는 것일까?  알고보니 그게 속임수에 넘어가서 그렇단다. 이런 속임수 이야기는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영화를 통해서 우리도 많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수컷은 자신의 첫번째 둥지에서 적어도 2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두번째 둥지를 구한다. 그 사이에는 다른 이웃들의 둥지가 있다.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교묘한 속임수인 셈이다.  이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 '혼합생식전략'이다. 이것은 이웃의 수컷이 없는 새를 틈타서 이웃의 암컷에게 구애하는 전략이다. 수컷이 잠시 제 짝을 놔두고 둥지를 비우면 평균 10분에 한번씩 다른 수컷이 그의 영토에 들어오고, 평균 34번에 한번씩 침입자가 홀로 있는 암컷과 몰래 교미를 한다. 알락딱새의 교미 가운데 29퍼센트가 혼외정사이고, 새끼의 24퍼센트가 다른 수컷의 새끼인 것으로 과학자들이 보고하고 있다. 알락딱새에 비하면 인간의 2세는 대부분 혼외정사가 아닌 혼인의 결과물인 것으로 드러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까. 

지구상에 있는 4300종의 포유류 중에서 수컷이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당연히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1994년 말레이시아 인근 섬에 사는 디아크큰박쥐 수컷 11마리를 잡았는데, 기능이 활성화된 유선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손으로 짜니 젖이 나왔단다. 인간의 경우에도 남자가 특이하게 젖이 나온 경우가 왕왕 있었다. 기아상태에서 회복되는 과정의 남성에게서 유방이 발달하는 일은 흔히 관찰되었고, 젖이 나오는 사례도 여러번 보고되었다. 기아상태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호르몬의 이상이 생겨서 그렇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젖은 호르몬의 문제일까? 인간의 경우 젖의 생산은 프로락틴(prolactin)이라는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다. 반드시 임신과 출산을 해야 젖이 나오는 것이 아니란다. 처녀나 할머니도 젖을 일정기간 자극하면 호르몬이 자극되고, 유선이 발달해서 젖이 나온다니 참 상식밖의 이야기다. 남자도 신체적으로는 충분히 젖을 먹일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다. 진화는 여성에게 그 역할을 맡겼을 뿐이다. 그 대신 남자는 젖을 만드는 영양분(살코기)을 가져오는 성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이론적으로는 프로락틴 호르몬을 주입하고 젖꼭지를 일정기간 동안 자극해주면 남자도 충분히 아기에게 젖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단지 그것을 허용하는 심리적, 사회적 경계선이 너무 높기 때문일 뿐이다. 남자도 아기에게 젖을 주는 문제가 사회운동의 쟁점이 되고, 그것을 어떤 세력이 돌파하기 시작한다면 백년 안에 그런 일이 없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남녀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것조차 금기하던 시대가 불과 100년전인데, 오늘날 저렇게 허벅지 다 드러내놓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들을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가 되었으니 세상 일이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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